세계의 오페라 작곡가/프랑스

오펜바흐, 자크

정준극 2008. 3. 13. 10:18
 

프랑스 오페레타의 대명사

자크 오펜바흐


 

비제를 비롯한 몇몇 프랑스 작곡가들이 전통적 형식의 그랜드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고 있을 때, 다른 일각에서는 재미있는, 어찌 보면 천박하기까지 한 ‘유머 1번지’식 오페라 작곡에 전념한 사람이 있었다.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였다. 그 때까지의 오페라에서는 아리아가 아닌 설명조 내지 대화조의 대사를 레시타티브로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오펜바흐는 오페라에 일상적인 대화를 도입하였다. 노래와 노래 사이에 보통의 대화를 집어넣은 것이다. 완전히 ‘코미디 극장’이었다. 오늘날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미디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한 막(幕)에서 장(場)과 장 사이의 전환을 빠르게 하기 위해 무대 뒤에 드라마의 배경 그림을 그려 넣은 커다란 휘장을 치도록 한 것도 특징이었다.


가톨릭이 지배하던 엄숙한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유쾌 및 명랑한 작품을 내놓은 자크 오펜바흐는 원래 프랑스 사람도 아니고 가톨릭도 아니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야콥 에버스트(Jacob Eberst)였다. 집안 내력은 유태인이었다. 태어난 곳은 독일의 쾰른이었다. 그래서 만년에 오펜바흐는 자기 싸인을 O. de Cologne(오 드 콜론)이라고까지 했다. 원래 오 드 콜론 (Eau de Cologne)은 독일 쾰른지방의 특산품 향수를 말하지만 현재는 Perfume과 같은 용도로 쓰는 일반 향수를 말한다. 오펜바흐는 고향 쾰른의 특산품 ‘오 드 콜론’을 발음대로 O. de Cologne이라고 썼다..


그가 프랑스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열네살 때부터였다. 아버지가 첼로 교육을 위해 오펜바흐를 파리로 데리고 갔을 때였다. 파리에서 살자니 이름부터 바꿀 필요가 있었다. ‘자크’라고 바꾸었다. 오펜바흐는 첼로의 신동이었다. 하지만 걸핏하면 첼로 수업시간을 빼 먹었다. 극장을 가기 위해서였다. 특히 온갖 공연이 극장무대마다 철철 넘치는 봄철에는 아예 학교 빼먹고 극장에서 사는 것이 일과였다. 그럴 즈음에 오펜바흐는 자기가 작곡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슬며시 깨닫고 연습 삼아 오페라를 작곡해 보았다. 오펜바흐는 그렇게 작곡한 오페라를 공연하기 위해 온 파리의 극장을 찾아 부탁을 했지만 오펜바흐에게 무대를 내 줄 극장이 없었다. 당시 나폴레옹황제의 정부가 모든 극장의 공연 내용과 스케줄을 콘트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인의 생활' 


실의에 빠진 오펜바흐였으나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3류 극장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었다. 겨우 뒷골목 극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펜바흐는 ‘공연만 할수 있다면 무슨 일이던지 못할까 보냐?’ 라는 심정으로 공연과 관련된 허드레 일까지 모두 맡아 했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당연했고 악보 필사(베끼는 일), 무대 장치, 연출, 조명에 캐스팅, 심지어 무대 청소까지 했다. 오펜바흐가 우선 무대에 올리고 싶었던 오페레타는 Orphée aux Enfers(지옥의 오르페우스)였다. 그리스 신화인 오르페우스는 이상하게도 어떤 작곡가든지 한번쯤은 오페라로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스토리이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전 유럽적인 동경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오르페우스에 대한 신화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도 고전 작품에 심취하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 있다. 따라서 눈치 빠른 오펜바흐는 자기의 첫 도전작으로 오르페우스를 정했다. 지금까지 나온 오르페우 관련 오페라는 비극적인 스토리를 대변이나 하듯 무게가 있고 슬픈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오펜바흐의 오르페우스는 요절 복통의 코미디였다. 음악이 경쾌 발랄했던 것은 물론이고 연출, 무대장치, 대화, 의상, 소품 등등 모두 비극적인 엄숙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뒷골목 관객들의 환호는 대단했다. 소리를 지르고 좌석에서 일어나 춤을 추고....마치 오늘날의 Saturday Night Live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같았다. 아무튼 대 히트였다.

 

 '아름다운 엘렌'


오펜바흐는 코미디에 풍자를 가미했다. 풍자가 들어 있으면 그만큼 서민 관객들이 열광했기 때문이었다. 귀족에 대한 풍자, 고위 성직자에 대한 풍자....예나 지금이나 이런 소재를 싫어할 백성들은 없다. 그는 엄청난 규모의 그랜드 오페라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아마 그랜드 오페라는 더 이상 그랜드 해 질수가 없는 폭발 직전에 있었기 때문에 그 돌파구로서 풍자가 등장했는지도 모른다. 오펜바흐의 유명한 La belle Hélène(아름다운 엘렌)은 그랜드 오페라의 대명사인 베를리오즈의 Les Troyens(트로이 사람들)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다. La Vie Parisienne(파리인의 생활)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만 하는 대도시 파리를 풍자한 것이다. 이 ‘파리의 생활’에는 무희들이 멋진 각선미를 자랑하며 발을 번쩍 들어 허공을 차면서 괴성을 지르는 캉캉 춤이 처음으로 소개되어 그야 말로 눈이 돌아가는 대인기를 끌었다. 당시 일반 오페라 무대에서 그런 식으로 섹시한 춤을 추며 괴성을 지르는 일이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점잖은 귀족들도 변장하고 몰래 들어와 ‘히히 하하’거리면서 즐겼다.

 

 '호프만의 이야기'


흥미로운 사실은 오펜바흐도 딱 한 편의 무게 있는 비극적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이다. Les Contes d'Hoffmann(호프만의 이야기)이다. 대단한 성공이었다. 세계 걸작 오페라 선집의 상위권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불행하게도 오펜바흐는 ‘호프만의 이야기’ 초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오펜바흐가 병중에 있을 때 배우인 어떤 친구가 병문안을 갔다. 현관에서 영접한 하인에게 ‘그래, 어떠신가?’라고 물어 보았다. 하인은 ‘유감스럽게도 주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세상 어떤 일도 관심 없으신 듯 아주 편안하게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그래? 그 양반! 아마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 상당히 놀랄 텐데!’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있다. 오펜바흐는 생전에 무려 약 60편의 오페레타(또는 오페라 부파)를 작곡했다. 그 중에는 단막짜리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그럴듯한 스토리의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어떤 오페레타든지 춤이 등장하는 것은 프랑스 사람들의 발레 애호심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첫 오페레타 공연은 그가 36세 때였다. 그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5년 동안 약 60편의 오페레타를 작곡하였으므로 매년 2편 이상을 내놓았다는 계산이다.

 

 '게롤슈타인 대공부인'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수첩

● Les deux Avengles(1막. 1855 파리 Bouffes-Parisens 극장) ● Le Nuit blanche(1855 파리 Bouffes-Parisens) ● Ba-ta-clan(1855 파리 Bouffes-Parisens) ● Le Rose de Daint-Flour(1856 파리 Bouffes-Parisens ) ● Le Savetier et le Financier(1856 파리 Bouffes-Parisens) ● Le Vent du Soir ou L'horrible Festin(1857 파리 Bouffes-Parisens) ● Dragonette(1857 파리 Bouffes-Parisens) ● Une Demoiselle en loterie(1857 파리 Bouffes-Parisens) ● Le Mariage aux Laternes(Die Verlobung bei der Laterne. 1857 파리 Bouffes Parisens) ● Les deux Pêcheurs(1857 파리 Bouffes Parisens) ● Orphée aux Enfers(Orpheus in der Unterwelt. 지하세계의 오르페우스. 1858 파리 Bouffes Parisens) ● Les Vivandiéres de la Grande Armée(1859 파리 Bouffes Parisens) ● Geneviève de Brabant(1859 파리 Bouffes Parisens) ● Daphne et Chloé(1860 파리 Bouffes Parisens) ● Le Chanson de Fortunio(1861 파리 Bouffes Parisens) ● Le Pont des Soupirs(1861 파리 Bouffes Parisens) ● Le Roman Comique(1861 파리 Bouffes Parisens) ● Les Bavards(1862  바드 엠스 Kurtheater) ● Lischen et Fritzchen(1막. 1863 바드 엠스 Kurtheater) ● Le Brésilien(1863 파리 Theatre du Palais Royale) ● Jeanne qui pleure et Jean qui rit(1막. 1864 바드 엠스 Kurtheater) ● L'amour chanteur (1864 파리 Bouffes-Parisens) ● Die Rheinnixen(1864 비엔나 Hofoper) ● La belle Hélène(Die schöne Helena. 아름다운 헬렌. 1864 파리 theatre des Varierre) ● Les Bergers(1865. 파리 Bouffes Parisens) ● Barbe-Bleue(Ritter Blaubart. 1866 파리 Theatre des Varierre) ● La Vie Parisienne(Pariser Leben. 1866 파리 Theatre du Palais Royale) ● La permission de dis heures(1막. 1867 파리 Theatre Renaissance) ● La Grande Duchesse de Gerolstein(Der Grossherzogin von Gerolstein. 게롤슈타인 대공부인. 1867. 파리 Theatre des Varierre) ● Robinson Crusoe(로빈스 크루소. 1867 파리 OC) ● L'lle de Tulipatan (Die Insel Tulipatan. 툴리파탄 섬. 1막. 1868 파리 Bouffes-Parisens) ● La Périchole(1868 파리 Theatre des Varierre. 페루가 무대) ● La Diva(1869 파리 Bouffes-Parisens) ● La Princesse de Tresizonde(Die Prinzession von Trapezunt. 트라페준트의 공주. 1869. 바드 엠스 Kurtheater) ● Les Brigands(1869 파리 Theatre des Varierre) ● Boule de Neige(1871 파리 Bouffes Parisens) ● Le Roi Carotte(1872 파리 Theatre Garre) ● Fantasio(1872 파리 OC) ● Fleurette(1872 비엔나 Carl 극장) ● Les Braçonniers(1873 파리 Theatre des Varierre) ● Pomme d'Api(1막. 1873. 파리 Theatre Renaissance) ● Bagatelle(1막. 1874. 파리 Bouffes Parisens) ● Le Violoneux(1875 파리 Bouffes Parisens) ● La Boulangere(1875 Theatre des Varierre) ● Madame l'Archiduc(1875 파리 Bouffes Parisens) ● La Créole(1875 파리 Bouffes-Parisens) ● Le Voyage dans la lune(1875. 파리 Bouffes Parisens) ● Tarte à la Crème(1875 파리 Bouffes Parisens) ● Pierette et Jacquot(1876 파리 Bouffes Parisens) ● La boîte au lait(1876. 파리 Bouffes Parisens) ● La Foire Saint-Laurent(1877 파리 Folies Dramatique) ● Madame Favart(1878 파리 Flies Framatique) ● La Marocaine(1879 파리 Bouffes Parisens) ● La fille du Tambour-Major(Die Tochter des Tambourmajors. 1879. 파리 Folies Dramatique) ● Les Contes d'Hoffman(Hoffmans Erzählungen. 호프만의 이야기. 1881 파리 OC) *OC=Opera Comique극장


[오펜바흐 이후....]

20세기에 들어와서 프랑스의 오페라는 새로운 방향전환을 모색했다. 현대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새로운 시도였다. 이런 걸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참 머리의 회전도 빠르고 모험도 즐기는 것 같다. 오페라 현대화의 두 주인공은 클로드 드빗시(Claude Debussy)와 프랑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였다. 한편, 오펜바흐와 동시대를 살았던 에두아르 랄로(Edouard Lalo)도 프랑스 오페라의 이정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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