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휘델리오와 레오노레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 그 중에서 이 아이야말로 가장 극심한 산고를 겪고 태어난 아이이기에 가장 큰 슬픔을 안겨준 아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이다.’ 이것은 베토벤이 휘델리오에 대하여 쓴 글이다. 베토벤은 휘델리오를 쓰기 위해 11년을 투쟁했다. 다시 고쳐 쓰기를 수없이 하였다. 서곡만 다섯 곡을 썼다. 어떤 서곡이 가장 적합한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1803년 완성되었다. 23세 때였다. 실은 그 시기부터 그의 청각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절망이 엄습해 오던 때였다.
원래 이 오페라의 제목은 레오노레(Leonore)였다. 하지만 레오노레라는 오페라가 이미 여러 편 있다는 사실을 알고 휘델리오로 제목을 바꾸었다. 그러므로 ‘레오노레 서곡’은 ‘휘델리오 서곡’이기도 하다. 다만, 다섯 편의 서곡 중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를 ‘레오노레 서곡’이라고 부르며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그냥 ‘휘델리오 서곡’이라고 부른다. 휘델리오를 현대판 영화를 만든다면 데미 무어(Demi Moore)와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가 주역을 맡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데미 무어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장으로 형무소에 잠입한 열녀 플로렌스탄 역으로, 브루스 윌리스는 억울하게 수감되어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정치범 휘델리오 역으로 나오면 제격일 것이다. 분노에 찬 눈빛을 유지하면서!
'휘델리오' 현대적 연출
과거의 오페라는 그리스 신화나 문호들의 인기작품을 스토리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휘델리오는 보통 사람에 의한 보통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만, 그 보통 사람들이 보통이 넘는 사랑과 용기로서 권력과 탐욕에 저항하여 끝내는 자유를 얻는다는 얘기가 과거의 귀족적 오페라의 플롯과 다를 뿐이다. 신들이 운명이 바꾼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운명을 극복한 것이다. 베토벤은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베토벤의 장례식은 오스트리아의 국장으로 치루어졌다. 베토벤이 살던 집 부근의 슈봐르츠슈파니에키르헤(Schwarzpfanierkirche)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비엔나의 시민 수천명이 참석하여 애도하였다. 38명이 애도의 횃불을 들고 베토벤의 관을 호송하였다. 베토벤을 무척 존경하고 경외하였던 슈베르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다음해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 베토벤은 오늘날 슈베르트공원이라고 불리는 배링(Währing)묘역에 안장되었다. 이듬해에 슈베르트도 베링공동묘지의 베토벤 묘소 인근에 안장되었다. 나중에 베토벤의 유해가 비엔나 중앙묘지(Zentralfriedhof) 음악가 구역으로 이장되었을 때 슈베르트의 유해도 그곳으로 옮겨졌다.
'세계의 오페라 작곡가 > 독일-오스트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훔멜, 요한 네포무크 (0) | 2008.03.14 |
---|---|
호프만,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E.T.A.) (0) | 2008.03.14 |
베토벤, 루드비히 반 (0) | 2008.03.14 |
힘멜, 프리드리히 (0) | 2008.03.14 |
- 대본가 로렌조 다 폰테 (0) | 2008.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