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 새로운 예술 형태

정준극 2008. 3. 14. 15:37

● 새로운 예술 형태

 

바그너는 이같은 강력한 ‘새로운 예술 형태’를 창조하기 위해 기존의 모든 규범을 쓰레기 버리듯 버렸다. 기존의 오페라는 아리아와 레시타티브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아리아가 뛰어 날수록 탁월한 오페라로 인정받았다. 링 사이클에서는 아리아와 레시타티브가 끊임없이 연계되어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니 레시타티브이건 아리아이건 모두 음표로 표시되며 음표는 음절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서 그 영향은 실로 가변적이며 무정형이 되는 것이다. 바그너의 노래는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 모를 경우가 많다. 논리적인 방법으로 작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아리아에서처럼 멜로디가 반복되거나 다음 음이 예상되도록 작곡하지도 않았다. 아리아는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이 흐르는 형태였다. 말하자면 오케스트라 곡에서 솔로가 대단히 기교 높게 홀로 연주하는 것과 같은 형태였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배우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단순한 음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바그너 음악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로시니는 ‘바그너는 관찮은 작품을 많이 작곡했다. 하지만 왜 그렇게 괴상한지 모르겠다.’고 말한바 있다.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도 ‘바그너의 음악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고양이가 지르는 소리가 더 듣기 좋을 것 같다’고 까지 말했다. 바그너는 자기의 음악이 전통적 형식으로 작곡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바그너는 이를 위해서 극중의 각 주인공에게 나름대로 적합한 주제음악을 따로 따로 만들었다. 이것을 ‘주도적 주제’(Leitmotif:, Leading motive)라고 한다. 어떤 주인공이 무대에 등장할 때에는 그 주인공에게 속한 라이트모티브가 어떤 형태로든지 흘러나오도록 했다. 이런 테크닉을 이해한다면 영화 스타 워스(Star Wars)를 보라! 작곡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는 바로 바그너의 이같은 기법을 스타 워스에 도입하였다. 레이어 공주, 루크 스카이워커, 오비 완 케노비, 심지어는 요다가 등장할 때마다 이들에게 속한 각각의 전속 멜로디가 어떤 형태로든지 도입되고 있지 않은가?

 

'로엔그린'


바그너는 자기의 온 생애를 오페라에 던졌다. 바그너에게 오페라 이외의 작품은 없다. 그러나 바그너는 자기의 작품을 오페라라고 부르지 않고 뮤직 드리마(악극)이라고 불렀다. 가극(歌劇)과 악극(樂劇)의 차이이다. 바그너가 악극에 헌신하게 된것은 아마 초창기의 실패가 오기로 변하여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바그너는 완벽주의자였다. 바그너에게 ‘무대의 시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참 그럴듯한 일이다. 그는 무대 세트, 조명, 극장 설계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손길과 눈길이 닿아야 직성이 풀렸다. 그는 참으로 특이한 무대 연출을 창안했다. 발퀴레(바퀴벌레가 아님)에서는 여신들이 탄 말들이 하늘을 날라 다니도록 했다. ‘라인의 황금’에서는 세명의 늘씬한 라인 처녀들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시뮬레이션했다. 이들 세명의 라인의 처녀들이 88올림픽 수중발레에 출전했다면 당연히 금메달이었을 것이다.

 

'발퀴레'

 

이렇듯 바그너는 완전 복합 무대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수없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만큼 엄청난 인상을 던져 주었지만 무어라 해도 바그너의 악극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듣는 사람의 뇌리를 파고드는 음악이다. ‘라인의 황금’ 도입부의 음악을 예로 들어보자.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화음을 약간의 변화만 준 채 몇 번이고 반복하여서 들려준다. 라인의 깊은 수심을 느끼게 해주는 음조이다. 또는 발퀴레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법의 화염이 솟아 오를때 터져 나오는 음악, ‘신들의 황혼’에서 주인공 브륀힐데가 음탕스러운 장면을 연출할 때의 음악.....그런 분위기와 그런 극적인 장면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수 없는 기막힌 것이다. 이런 음악들은 우리의 머리칼을 으스스하게 곤두서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랑금지'


바그너 이후의 독일 오페라는 결국 그의 영향권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나아가 유럽의 다른 오페라 활동에도 무시 못할 영향을 미쳤다. 푸치니의 첫 오페라인  르 빌리(Le Villi)는 바그너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며 드빗시의 Pelleas et Melissande(플레아와 멜리상드)도 적어도 형식에서는 바그너의 악극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베르디도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것은 두 사람이 모두 음악과 드라마의 이상적인 조화를 추구했다는 성향을 보여주었기에 이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인 것 같다. 다만, 바그너와 베르디이후에는 실제로 오페라와 뮤직 드라마의 구별이 애매하게 되었다는 점은 주의해 볼 사항이다.


바그너는 생전에 모두 11편의 악극을 작곡하였다. 링 사이클의 4개 작품을 따로따로 본다면 13편의 작품을 남긴 셈이다. 베르디와 같은 해인 1813년 태어난 바그너는 베르디가 84세까지 장수한데 비하여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첫 작품을 내 놓은 시기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르다. 베르디가 26세에 첫 작품을 내놓은데 반하여 바그너는 19였다. 그러나 바그너의 첫 작품인 Die Hochzeit(결혼)은 당시 미완성 상태로 공연되었기 때문에 바그너의 오페라가 언제 처음 공연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Die Hochzeit는 초연 아닌 초연이후 무려 1백년이 더 지난 1938년, 나치 치하에서 보완된 형태로 다시 초연되었다.

 

 지글린데 역의 플로렌스 이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