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 매드 루드비히와의 인연

정준극 2008. 3. 14. 15:34
 

● 매드 루드비히와의 인연

이렇듯 불운하던 바그너에게 드디어 행운의 미소가 던져졌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러울 만큼 자기 특유의 오페라에 집착하였던 바그너의 운명은 1864년 바바리아 왕 루드비히(Ludwig)를 만남으로서 일대 방향전환 되었다. 일명 ‘미친 루드비히’(Mad Ludwig)라고 불리는 이 바바리아의 국왕은 바그너의 열렬 팬이었다. 파리로 특사를 보내 바그너를 정중하게 모셔왔고 자기 궁전에서 편안하게 지내도록 했다. 요구사항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의 일환으로 자기 영토에서의 바그너 작품의 공연을 무조건 지원했다. 두 사람이 서로 죽고 못 살았던 것은 아마 성격이 비슷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루브비히 왕도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성격이 괴팍하고 광포하여서 아니 할 말로 ‘미친 놈’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결국 루드비히 왕은 완전히 미쳐서 나중에 호수에 빠져 자살하였으니 알아 모실만 하다.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왕 - 바그나와 함께


어쨌든 바그너는 바바리아에서 루드비히 왕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동안 자기의 꿈과 이상과 음악 이론을 한껏 펼칠 수가 있었다. 1865년, 바바리아의 뮌헨은 바그너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Tristan und Isolde(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초연을 대대적으로 축하하였다. 그로부터 3년후에는 당시 오페라 중에서 가장 긴 작품인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무대에 올려졌다. 원래 코미디 풍의 내용이지만 공연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화장실에 갔다가 나온 김에 집에 가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남아 있다고 해도 가끔씩 하품하는 사람이 많았다.

 

 루드비히왕이 세운 노이슈봔슈타인 성 - 매드 루드비히는 '백조의 왕'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다음 해(1869년), 바그너의 거작 중에서 거작인 링 사이클(또는 ‘니벨룽의 반지’)이 선보였다. ‘사이클’이라고 한 것은 4개의 각각 다른 오페라가 조합되어 하나의 거대한 오페라는 이루기 때문이다. 4개의 오페라는 Das Rheingold(라인의 황금: The Rhein Gold), Walküre(발퀴레: The Valkyrie), Siegfried(지그프리트), Götterdammerung(신들의 황혼: Twilight of Gods)을 말한다. 중세의 민속 설화를 주제로 한 이 링 사이클(혹시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지 모르겠음)로서 바그너는 일약 세계 오페라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말년의 루드비히 (루드비히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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