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스타일의 오페레타 지향
프란츠 폰 주페
프란츠 폰 주페(Franz von Suppé: 1819-1895)는 요한 슈트라우스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면서 비에나 오페레타의 꽃을 피우는데 기여한 사람이다. 주페는 원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한 달마티아 왕국의 스팔라토(현재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과거 유고슬라비아와 이탈리아 접경지역, 현재는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다. 주페의 가정은 벨기에 출신으로 아마도 18세기에 달마티아 지역으로 이민해 온 것으로 본다. 주페는 도니체티의 먼 친척이 된다. 그래서 이탈리아와의 연관도 있다. 주페의 원래 이름은 프란체스코 에체킬레 에르메네질도 카발리에레 주페 데멜리(Francesco Ezechiele Ermenegildo Cavaliere Suppé Demelli)였다. 그는 비엔나에 있을 때에 이름이 너무 길어서 곤란하여서 독일식으로 간단히 프란츠 폰 주페라고 고쳤다. 특히 Cavaliere는 von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는 주페의 이름을 프로그램에 쓸 때 한동안 프란체스코 주페 데멜리(Francesco Suppé-Demelli)라고 썼었다. 그러므로 그런 이름을 보면 주페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페는 어린 시절늘 차다르(Zadar)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레슨을 받았고 작곡도 시도했다. 그는 10대 소년일 때에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로 가서 플루트와 화성악을 공부했다. 그가 처음으로 음악다운 작품을 쓴 것은 크레모나에 있을 때였다. 1832년 차다르의 프란치스코 교회에서 처음 연주된 로마 가톨릭 미사곡이었다. 그후 그는 파두아에서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법학공부를 했다. 주페는 밥학을 공부하면서도 음악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주페는 성악가이기도 했다. 1842년에는 헝가리의 소프론 극장에서 '사랑의 묘약'의 둘까마라로서 성공적인 데뷔 공연을 가졌다.
여러 재능의 주페를 비엔나 요제프슈타프극장장인 프란츠 코포르니(Franz Pokorny)가 눈여겨 보고 비엔나로 초청했다. 비엔나에 온 주페는 좀 더 실력을 쌓기 위해 지휘자 겸 작곡가인 이그나즈 폰 자리프리트(Ignaz von Seifried)와 음악이론가 겸 자휘자 겸 작곡가인 시몬 제흐터(Simon Sechter)로부터 작곡과 이론과 지휘법을 공부했다. 그후 주페는 요제프슈타프극장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주페는 요제프슈타트극장에 있을 때에 거의 1백편 이상의 음악을 작곡했다. 이어 레오폴드슈타트에 있는 칼극장과 마리아힐르퍼에 있는 테아터 안 데어 빈, 그리고 바덴극장을 위해서도 작품을 썼다. 주페는 마이에르베르의 '위그노'의 비엔나 초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제니 린드가 주인공을 맡은 것이었다. 주페는 1895년에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엔나의 요제프슈타트극장. 주페가 처음 지휘자 생활을 한 극장이다. 주페는 이곳에서 100여편의 작품을 썼다.
그의 오페레타로서는 Dichter und Bauer(시인과 농부), Die leichte Kavallerie(경기병), Die schöne Galathee(아름다운 갈라테), Ein Morgen, ein Mittag und ein Abend in Wien(비엔나의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 등이 있다. 이들 오페레타는 요즘 거의 공연되지 않지만 서곡들은 대단한 사랑을 받는 것들이다. 보카치오(Boccaccio)는 그의 가장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오페레타에서 오페라를 향한 노력이었다. 주페는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음악가 묘역에 안장되었다.
'보카치오'. 2012년 바덴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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