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 비엔나 오페레타의 황금시대

정준극 2008. 3. 14. 15:43
 

● 비엔나 오페레타의 황금시대

비엔나는 화려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화를 고즈넉이 간직한 도시이다. 비엔나는 세계 음악사에 찬연히 빛나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말러, 그밖에도 열거할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음악인들이 그들의 천재적인 음악혼을 불태웠던 도시이다. 비엔나는 왈츠의 도시이다. 비엔나는 오페레타의 도시이다. 비엔나 왈츠로부터 태어나 비엔나 왈츠에 의해 영글기 시작한 비엔나의 오페레타는 비엔나가 지니고 있는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과 낭만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비엔나의 오페레타는 파리의 오페라 코믹이나 밀라노의 오페라 부파, 또는 런던의 발라드 오페라와는 감흥이 전혀 다르다.

 

 리투아니아 요페라단의 '비엔나 기질' 포스터


19세기 초반부터 싹을 키우기 시작했던 비엔나 오페레타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황금시대를 맞이한다. 그 황금시대의 정상에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있다. 돌이켜보면 비엔나에는 베토벤을 위시하여 브람스와 브루크너와 같은 ‘무거운’ 작곡가들이 비엔나 음악을 대표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들은 마치 18세기를 암담함과 침울함으로 마무리하려는 듯 무거운 음악들을 만들어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영광의 합스부르크 제국은 날이 갈수록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은 사회, 정치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파묻혀 소생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비엔나는 과거의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집착을 아련한 향수로만 삼키고 있으려 하지 않았다. 비엔나는 ‘가볍고’ 화려하며 유쾌한 음악을 찾았다. 그리하여 비엔나 왈츠가 꽃을 피우게 되었고 비엔나 오페레타가 생명을 얻게 되었다. 과거를 망각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데에는 이 이상의 처방이 없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살론에 모인 음악 친구들(브람스의 모습도 보인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뒤에 서 있는 여인은 그의 세번재 부인.

 

비엔나 오페레타는 그 시기를 봄, 여름, 가을로 나눌수 있다. 봄은 황금시대이고 여름은 백은(白銀)시대이다. 가을은 무엇인가? 황금시대를 되돌아보며 아쉬워하는 가을일뿐이다. 비엔나 오페레타의 싹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아버지)와 요셉 란너(Joseph Lanner)로 대표되는 란들러-왈츠의 선구자들이 키웠다. 이 시대의 문은 프란츠 폰 주페를 비롯하여 칼 밀뢰커, 칼 지레르, 칼 첼너, 로베르트 슈톨츠와 같은 신예들이 열었으며 그 정상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아들)가 자리 잡고 있다. 황금시대의 오페레타가 화려함과 유쾌함 그 자체였다면 백은시대의 오페레타는 화려한 향수와 우울한 애수가 복합되어 있는 것이었다. 황금시대의 대표작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와 ‘비엔나 기질’(Wiener Blut)이며 백은시대의 대표작은 프란츠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이다. 비엔나 오페레타의 가을은 세기말을 지내고 새로운 세기에 들어와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지만 영광스러웠던 역사와 찬란했던 음악에의 탐미는 살아있다는 것을 음미하게 해 주는 시기이며 갈채를 보냈던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비엔나 오페레타를 대표한 인물은 오스카 슈트라우스이다. 대표작은 Ein Walzertraum(왈츠의 꿈)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비엔나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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