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슈필과 오페레타의 연결
하인리히 베르테
오페레타 Das Dreimäderlhaus(세 아가씨의 집)로 비엔나 오페레타 사회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하인리히 베르테(Heinrich Berté: 1858-1924)는 세기말의 합스부르크의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청년 시절부터 비엔나에서 활동하다가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으므로 오스트리아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세 아가씨의 집’은 슈베르트의 징슈필을 편곡한 것이다. 또 다른 오페레타인 Die Frühling und die Liebe(봄과 사랑)도 슈베르트의 징슈필을 완전히 다시 편곡한 것이다. ‘세 아가씨의 집’이 1916년 비엔나의 라이문트(Raimund)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관중들이 좋아하는 모습은 표현할수 없을 정도였다. 이 오페레타에 나오는 노래는 삽시간에 비엔나 거리를 누빌 정도였다. 비엔나에서의 성공은 세계로 번져나갔다. 대본이 22개국어로 번역되었고 60여개국에서 공연되었다. 대단한 성공이었다. 베를린, 파리, 뉴욕에서의 초연도 비엔나에서의 초연만큼이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수백회씩 연속 공연될 정도였다. 이후 그의 다른 오페레타 작품도 서서히 재평가되어 환영을 받기 시작했다.
베르테는 청년시절에 주로 ‘무거운’ 음악을 썼다. 6편의 발레음악, 1편의 오페라였다. 미안하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비엔나에서 음악출판을 하고 있던 형 에밀(Emil)이 ‘심각한 오페라가 밥 먹여주냐? 오페레타를 써라!’고 종용했다. 여기까지의 이력서는 같은 고향 사람인 게오르게 야르노와 비슷하다. 다만 게오르그 야르노의 형은 동생에게 자기 부인, 즉 형수를 위한 오페레타를 작곡하라고 종용했지만 베르테의 형인 에밀은 오로지 동생 베르테의 앞날을 위해 오페레타의 작곡을 종용했던 점이 다르다. 경위야 어찌 되었던 결론적으로 헝가리 출신의 이 두 사람은 똑같이 비엔나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페레타의 역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당시 비엔나에서는 슈베르트의 징슈필이 자주 공연되고 있었다.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지난날의 향수를 맛보기 위해 슈베르트를 찾았다. 오페레타 Das Dreimäderlhaus(세 아가씨의 집)는 형의 권유에 따라 슈베르트의 징슈필을 대대적으로 재편성한 작품이었다. 비엔나의 프라터(Prater)부근에 있는 칼(Carl)극장은 이 오페레타의 내용이 형편없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라이문트극장이 인심을 써서 받아 주었다. 단, 대타 조건이었다. 원래 계획되었던 오페레타 공연이 사정상 공연할수 없게 되면 그 때를 대비해서 공연한다는 조건이었다. 어느날 예상했던 비상사태가 일어났고 대타자로 ‘세 아가씨의 집’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후의 대성공 스토리는 생략!
'세아가씨의 집'(슈베르트 역의 Fritz Schroedter는 1916년 초연 당시 60세의 테너였다. 상대역인 Hannerl은 소프라노 Anny Rainer가 맡았다.
베르테의 오페레타 수첩
● Der neue Burgmeister(신임시장. 1904 비엔나) ● Die millionen Braute(백만달러 신부. 1904 뮌헨) ● The City Regent(섭정. 1905 뮌헨)● The Small Chevalier(작은 신사. 1907 드레스덴) ● The Beautiful Gardist(아름다운 경호원. 1907 브레스라우) ● The Luck Fool(행운의 바보. 1908 비엔나) ● Kreolenblut(1911 함부르크) ● The Fairy Tale Prince(동화나라 왕자님. 1914 하노버) ● Das Dreimäderlhaus(세 아가씨의 집. 1916 비엔나) ● Die Frühling und die Liebe(봄과 사랑. 1917 부다페스트) ● Die drei Kavaliere(세 사람의 신사. 1919 비엔나) ● Coulissengeheimnisse(1920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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