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볼프, 휴고

정준극 2008. 3. 14. 15:54
 

로맨틱 가곡의 거장

휴고 볼프


  

슬로베니아의 그라데츠(Gradec: 현재의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맨틱 가곡의 거장 휴고 볼프(Hugo Wolf: 1860-1903)는 오페라를 단 한편만 남겼다. 1896년 만하임 궁정극장에서 초연된 Der Corregidor(코레기도르: 주지사 또는 지방판사)이다. 낭만적인 가곡의 향취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거의 잊혀 있는 형편이다. 1875년 비엔나음악원에 들어간 볼프는 2년동안 음악공부를 했지만 졸업장은 획득하지 못했다. 아마 가난정신이 없었기 때문인것 같았다. 생활이 아주 넉넉했으므로 술과 여인으로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향락병(알코홀 중독+성병 등)에 걸려 오래 살지 못했다. 그러므로 차분히 공부하여 학위를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얼마후 볼프는 잘츠부르크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취직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하여 비엔나로 돌아와 오로지 작곡에만 전념했다.


볼프의 삶은 아름다운 예술가곡 만큼이나 행복하지 못했다. 20대와 30대에 정열적인 생활을 했던 그는 질병(매독)에 걸려 고생하다가 끝내는 정신질환을 이기지 못하고 43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페라 ‘코레기도르’(지방판사)를 작곡하던 때에 볼프의 건강은 상당히 나쁜 상태였다. 매독의 기운이 온 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볼프는 구스타브 말러와 친한 사이였다. 당시 말러는 비엔나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이었다. 볼프는 병문안을 온 말러에게 코레기도르가 완성되었으니 공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말러는 병세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볼프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이후로 볼프는 마치 자기가 오페라감독이 되어 ‘코레기도르’를 무대에 올리는 환상에 빠졌다. 결국 볼프는 정신병원으로 옮겨져 짧은 여생을 보내야 했다.


볼프의 음악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의 가곡은 세련된 보컬을 중요시한 것이다. 그의 가곡에서 하모니는 멜로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드라마틱한 개념도 멜로디를 위한 것이었다. 53곡의 주옥같은 가곡을 담은 첫 가곡집은 그가 28세 때에 출판된 것이다. 이듬해에는 아이헨도르프를 배경으로한 20곡을 내 놓았고 같은 해에 괴테의 시에 의한 51곡의 가곡을 내놓았다. 이어 그는 스페인 가곡집, 이탈리아 가곡집을 집대성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모든 작업은 28세로부터 36세까지의 8년동안 이룩된 것이다. 그는 잘츠부르크에 있을 때 살론블라트(Salonblatt)라는 음악신문을 만들어 대담한 평론을 게재하여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방장관'(지방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