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야르노, 게오르그

정준극 2008. 3. 14. 15:59
 

비엔나 오페레타 백은시대의 주역

게오르게 야르노


 

‘메리 위도우’의 레하르가 비엔나 오페레타의 황금(黃金)시대를 마지막으로 장식한 사람이었다면 게오르게 야르노(George Jarno: 1868-1920)는 레하르의 뒤를 이어 비엔나 오페레타의 백은(白銀)시대의 길을 연 인물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이후 비엔나 오페레타의 화려했던 명맥을 이은 두 명의 중요한 인물, 즉 레하르와 야르노가 오스트리아 출신이 아니고 헝가리 출신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19세기말 당시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연합된 나라였다. 아무튼 야르노도 레하르와 마찬가지로 헝가리 출신으로 비엔나에서 활동했고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편의상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가 대열에 넣었다.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게으로게 야르노는 부다페스트에 있는 ‘독일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활동하다가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비엔나로 건너왔다. 비엔나에 있는 어떤 극장의 감독이었던 형 요셉의 도움이 컸다. 동생 게오르게는 이미 3편의 오페라를 내놓아 좋은 평을 받은바 있었다. 형 요셉은 동생 게오르게에게 오페레타를 작곡해 보라고 은근히 강요했다. 형 요셉의 부인은 소프라노였다. 즉, 자기 부인을 위해 동생에게 오페레타를 작곡해 달라고 당부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온 오페레타가 Die Försterchristel(삼림관 크리스텔)이었다. 이 작품은 공연되자마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용기를 얻은 야르노는 4편의 오페레타를 연속하여 만들어 냈다. 그 중에서 Das Musikantermädel(The musi edge girl)은 특별한 성공을 거두었다. 오스트리아가 존경하는 하이든과 그의 사촌동생 칼에게 얽힌 사랑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에스터하지공을 비롯한 이 가문의 실존했던 인물들이 오페레타에 등장하고 있으며 더구나 하이든에게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라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당시 비엔나 음악계는 게오르게 야르노가 과연 오페레타 작곡가로서 자격이 있느냐는 주장까지 했고 ‘역시 헝가리의 무식한 XX'라고 빈정대기도 했다. 하지만 헝가리가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왔고 독립운동을 할 때마다 가차 없는 압박을 받았던 점을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할수 있다.

 

'음악가의 아가씨'

 

야르노의 오페라/오페레타 수첩

● Die schwarze Kaschka(검은 카슈카. 오페라. 1895) ● The Judge of Zalamea(찰라메아의 판사. 오페라. 1898) ● The Broken Jug(깨진 독. 오페라. 1902) ● Die Försterchristel(삼림관 크리스텔. 오페레타. 1907) ● The Foldfish(오페레타. 1907) ● Das Musikantermädel(The musi edge girl. 음악가의 아가씨. 오페레타. 1910) ● The Navy Gustl(오페레타. 1912) ● Das Farmermädchen 농부의 딸. 오페레타.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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