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시상에 감동
클레멘스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흡혈귀 백작만을 연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이란 이름은 독일계에서 양반가문의 이름이다. 세기말 독일의 작곡가 클레멘스 폰 프랑켄슈타인(Clemens von Frankenstein: 1875-1942)도 당당한 집안 출신이다. 예를 들면 그의 형인 프랑켄슈타인백작은 파리주재 독일대사였다. 오페라 ‘황제의 시인 이태백’(Li-Tai-Pe, Der Kaisers Dichter)을 작곡한 프랑켄슈타인의 풀 네임은 상당히 길다. Clemens Erwein Heinrich Karl Bonaventura Freherr von Frankenstein이다. 이름만 보아도 그가 귀한 집 출신임을 알수 있다. 1875년 독일 뷔젠타이트(Wiesentheid)에서 태어난 프랑켄슈타인 오늘날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이다. 하지만 세기말 독일의 유명한 지휘자로서는 기억되고 있다. 그는 베를린, 뮌헨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당시 신예 작곡가인 코른골트(Korngold), 피츠너(Pfitzner), 브라운펠스(Braunfels), 쿠브루아지에(Couvroisier)등의 오페라 작품을 소개하였다.
프랑켄슈타인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대본가인 휴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sthal)과 친분이 깊었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의 오페라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특히 단막 오페라인 라합(Rahab: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에 대한 얘기)은 스토리가 성서에 기본을 둔 것도 그렇지만 섬뜩한 엑소티시즘에 있어서도 살로메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많다. 프랑켄슈타인은 1907년부터 베를린 왕립프러시아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1920년부터는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극장 음악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권고에 의해서였다. 프랑켄슈타인은 뮌헨에서 1933년까지 뮌헨오페라페스티벌을 주관하였다. 그러다가 나치의 퇴폐예술 추방 정책에 따라 음악무대에서 강제로 추방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는 독일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몰아 들어가던 1942년 뮌헨 교외의 호헨도르프(Hochendorf am Pilsensee)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랑켄슈타인의 대표작은 ‘황제의 시인 이태백’이다. 스위스 출신의 작곡가 폴크마르 안드레아(Folkmar Andreae: 1879-1962)가 ‘이태백’(Li-Tai-Pe)라는 타이틀의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여덟 편의 노래를 작곡한 것도 프랑켄슈타인의 오페라 ‘이태백’과 무관하지 않다. 오페라 ‘이태백’은 전제주의(파치슴)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관현악곡, 실내악, 종교음악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오페라는 5편을 완성하였다.
'라합'- 샤갈의 그림
프랑켄슈타인의 오페라 수첩
● Griseldis(1898 트로파우) ● Fortunatus(1905 베를린) ● Rahab(1909 부다페스트) ● Die Beine(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의 대본가인 휴고 폰 호프만슈탈의 대본에 의한 판토마임: 1916 다름슈타트) ● Li-Tai-Pe, Der Kaisers Dichter(1920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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