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뢰베, 프레데릭

정준극 2008. 3. 14. 16:24
 

뮤지컬음악의 귀재

프레데릭 뢰베


 

프레데릭(프릿츠) 뢰베(Frederick Löwe: 1901-1988)는 베를린에서 비엔나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몬트 뢰베는 당시 상당히 유명한 뮤지컬 스타였다. 아버지 에드몬트는 유럽 전역은 물론, 북미와 남미까지 순회공연을 다녔다. 프릿츠가 태어날 때에는 마침 부모가 베를린에서 정착하며 무대활동을 하던 시기였기에 그나마 정착할수 있었다. 어린 프릿츠는 5세때부터 13세때까지 사관학교 스타일의 학교에 다녔다. 프릿츠는 학교가 싫었다. 왜냐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다른 나라에 순회공연을 갈 때에는 어린 프릿츠를 학교에 맡기기 때문이었다. 어떤 때는 크리스마스도 학교기숙사에서 혼자서 보낸 경우가 있었다. 이후로 프릿츠는 크리스마스라면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다. 프릿츠는 이미 7-8세 때에 어떤 노래든지 귀로 듣고 피아노로 연주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아버지가 뮤지컬 출연을 위해 집에서 노래연습을 하면 전체 스코어를 피아노 반주로 해줄 정도여서 아버지의 연습에 큰 도움을 주었다. 어린 아들의 뛰어난 재능을 본 아버지는 프릿츠에게 음악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프릿츠는 베를린의 유수한 음악학교에 들어갔다. 프릿츠는 학생이면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1925년 프릿츠의 아버지 에드몬트는 뉴욕에서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프릿츠는  아버지와 함께 뉴욕으로 갔다. 얼마후 아버지는 베를린으로 돌아갔지만 프릿츠는 브로드웨이를 제압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았다.


뉴욕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수입이 없어서 굶기를 밥먹듯이 했다. 잠잘 곳이 없어서 눈 오는 날 밤에 공원의 벤치에서 잠을 청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당시 뉴욕의 요크빌(Yorkville)은 독일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프릿츠는 이곳의 어떤 무성영화관에서 피아노반주를 하여 겨우 입에 풀칠을 할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대공황이 몰려왔다. 프릿츠는 막연한 생각으로 서부로 갔다. 그러나 서부라고 해서 프릿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프릿츠는 한때 몬타나주에서 말을 타고 우편배달을 하기도 했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브로드웨이에는 차가운 바람만 불었다. 그는 내기권투시합에 출전하여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프릿츠는 우연한 기회에 작사가인 알란 제이 레르너(Alan Jay Lerner)를 만났다. The Lambs Club이라는 식당의 화장실에서였다. 알란은 Great Lady(위대한 레이디)라는 뮤지컬의 대본을 구상하고 있었다. 프릿츠가 음악을 맡게 되었다. 대성공은 아니었지만 음악은 그런대로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두 번째 합작은 The Day Before Spring(봄을 기다리는 날)이라는 뮤지컬이었다, 이번에는 상당히 좋은 평을 들었다.

 

 '브리가둔'


알란-프릿츠 콤비의 히트상품은 오페라(뮤지컬) Brigadoon(브리가둔)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정취가 풍기는 주제였다. 이로서 두 사람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다음번 히트작은 1956년의 My Fair Lady(마이 페어 레이디)였다.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래 가장 오랜 공연기록을 갖는 작품이 되었다. My Fair Lady를 공연하는 극장은 표를 구하려는 사람으로 장사진이었으며 심지어 매표소 앞에서 밤을 지새며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프릿츠는 아침마다 이들에게 따듯한 커피를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당신이 뭔데 이러는 것이요?’라고 의아해 했다. 프릿츠는 ‘예, 제가 바로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음악을 작곡한 프릿츠 뢰베라고 합니다.’라고 공손히 대답했다. 사람들은 ‘그래? 당신이 작곡가라고? 그럼 나는 덴마크왕이다!’라고 말하며 프릿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음번 히트작품은 Camelot(캬멜롯)이었다. 처음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제작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리챠드 버튼, 줄리 앤드류스, 로버트 굴레(Robert Goulet)를 에드 설리반 쇼에 나가도록하여 캬멜롯에 나오는 노래를 한두곡 부르도록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매표소는 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브로드웨이에서 은퇴한 프릿츠는 팜 스프링에서 노후를 보내다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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