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영국

저맨, 에드워드

정준극 2008. 3. 18. 09:22
 

설리반의 후계자

에드워드 저맨

 

 

영국 음악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공로로 기사 칭호를 받은 에드워드 저맨(Sir Edward German: 1862-1936)경은 영국 오페레타 분야에서 아서 설리반의 후계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의 이름은 이상하게도 독일 사람이라는 뜻의 German이지만 독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표작은 Merrie England(메리 잉글랜드)라고 하는 대단히 애국적인 작품이다. 이 오페레타가 공연되면 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기립하여 주인공 메리 잉글랜드가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불렀으며 이 전통은 오늘날 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오페레타는 1902년 런던 사보이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작곡 활동을 했지만 말년에 이르러 시대의 조류에 따라 현대음악이 고개를 들게 되자 전통을 고수하는 의미에서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저맨은 영국 슈롭셔어(Shropshire)라는 곳에서 교회 오르간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오르간과 피아노를 배웠다. 열 살도 안된 저맨은 피아노를 치는 누이를 비롯하여 주변 아이들을 모아 콘서트 밴드를 구성하고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만큼 대단한 아이였다. 저맨이 장성하자 아버지는 그가 공학에 관심이 있는 것을 보고 조선회사에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중병에 걸려 공학 공부를 할수 없었다. 18세가 된 저맨은 런던의 왕립음악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1885년 Te Deum(테 데움)을 작곡하여 Charles Lucas Medal(챨스 루카스 메달)을 받게 되자 바이올린 전공을 취소하고 작곡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사실 저맨은 오페라에 대하여 경험이 별로 없었다. 다만 막간음악에 대하여는 대단한 재능을 보여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처음 제공한 막간극음악은 리챠드 맨스필드(Richard Mansfield)의 Richard III(리챠드 3세)였다. 특히 이 막간음악의 서곡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는중 1900년 아서 설리반이 세상을 떠나자 설리반의 뮤지컬을 공연키로 약속되어있던 극장주들은 저맨에게 설리반의 미완성 작품인 The Emerald Isle(에메랄드 섬)을 완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설리반을 존경했던 저맨은 이 부탁을 승낙했다. 저멘은 기한내에 뮤지컬을 완성하기 위해 예정된 바이올린 연주회마저 취소했다. 설리반-저맨 합작의 ‘에멜랄드 섬’은 대성공이었다. 모두들 ‘설리반이 살아 돌아왔다’고 하면서 감격을 참지 못했다. 이에 힘입은 저맨은 이듬해 다른 코믹 오페라를 쓰기로 했다. 저 유명한 Merrie England(메리 잉글랜드)였다. 대본가는 ‘에멜란드 섬’의 대본을 썼던 바실 후드(Basil Hood)였다. 메리 잉글랜드 역시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코믹 오페라인 Fallen Fairies(추락한 요정들)은 실패였다. 이후로 저맨은 작곡가로서의 경력에서 손을 떼었다. 다만 1919년 조지5세의 대관식에서 행진곡과 찬송가를 작곡하는 정도였다. 저맨은 1928년 기사작위를 받았다. 그는 1934년 향년 74세로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향인 쇼롭셔어의 이름도 이상한 Witchurch(마녀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메리 잉글랜드'

 

저맨의 오페라 수첩

● The Two Poets(1886: The Rival Poets으로 수정: 1901) ● The Emerald Isle(1901: 설리밤의 미완성작품을 오페라로 완성) Merrie England(1902) ● A Princess of Kensington(1903) ● Tom Jones(1907) ● Fallen Fairies(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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