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미주와 아시아

에드몽 데데(Edmond Dede)

정준극 2008. 3. 19. 14:59
흑인 바이올린 천재

에드몽 데데


 

에드몽 데데(Edmond Dede: 1829-1903)는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이민의 후손인 흑인 음악가이다. 바이올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데데는 뉴올리언스에서 음악을 공부했으나 흑인으로서 더 이상 학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워 유럽으로 발길을 돌렸다. 처음에는 벨기에로 갔으나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여 파리로 방향을 바꾸었다. 파리에서는 그의 재능이 빛을 볼수 있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계몽의 도시 파리에서는 누구나 재능이 있으면 인정을 받을수 있었던 것이다. 데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함께 지원을 받았다. 그는 기회의 나라 프랑스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하였다. 그는 파리음악원의 오디션에 합격할수 있었다. 데데의 재능을 크게 인정을 받아 그로부터 25년동안 보르도극장의 지휘자로 활동할수 있었다.


1893년 데데는 고향인 뉴올리언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고향에서도 인정받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를 떠나 뉴올리언스로 향하던 여객선은 항해중에 풍랑을 만나 가까스로 텍사스의 어느 해안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러나 데데는 애지중지하던 크레모나(Cremona)바이올린은 파도 속에 분실했다. 비록 명품 바이올린을 잃어버려 음향도 형편없는 연주회장에서 허술한 바이올린을 사용해야 했지만 뉴올리언스에서의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따듯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어느때 Le Trouvere를 악보를 보지 않은채 연주한 일이 있었다. 뉴올리언스의 라베이유(L'Abeille) 신문은 그의 재능을 극찬했다. 데데는 거의 모든 유명 작품들을 암기로 연주할수 있었다고 한다. 데데는 수많은 바이올린 소품과 발레곡을 남겼다. 알제리를 방문했을 때 작곡한 Serment de l'Arae(아랍의 서약)은 북아프리카에서 대단한 찬사를 받은 바이올린 작품이다. 그는 그랜드 오페라 Le Sultan d'Ispahan(스페인의 술탄)을 완성하지 못한채 1903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의 술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