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치히의 혜성 Hans Hermann Nielssen (한스 헤르만 닐쎈)
독일의 한스 헤르만 닐쎈은 20세기 중반에 오페라 무대를 풍미하였던 위대한 바그너 바리톤이다. 그의 음성과 재능을 굳이 다른 사람과 견준다면 프리드리히 쇼르(Friedrich Schorr)와 비교할수 있을 뿐이다. 닐쎈은 찬란하게 아름다우며 따듯한 음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프레이싱(Phrasing: 아리아 등의 소절을 나누어서 노래 부르는 테크닉)이 뛰어났으며 레가토(Legato)는 완벽했다. 그는 몇장의 음반을 남겼다. 바그너 음악을 가장 세련되게 부른 것들이었다. 음악사적으로 대단히 귀중한 음반들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많은 음반을 남겨 놓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레코딩보다 무대 공연에 더 중요한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레코딩에 관심을 두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당시는 수많은 베이스-바리톤이 활동하던 때여서 무대에서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더구나 공연에 신경을 써야 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바리톤으로서는 빌헬름 로데(Wilhelm Rode), 루돌프 보켈만(Rudolf Bockelmann), 요세프 헤르만(Josef Herrmann), 한스 호터(Hans Hotter), 훼르디난드 프란츠(Ferdinand Frantz), 파울 쇠플러(Paul Schöffler) 등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 닐쎈과 쇼르가 가장 뛰어났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한스 작스
독일 북부 발트해 연안, 폴란드 접경의 단치히(Danzig)에서 태어난 그는 사업가로서 경력을 시작했다가 성악으로 진로를 바꾼 경우였다. 1차 대전이 막바지에 오른 때인 1916년, 닐쎈은 베를린에서 오라토리오와 가곡(Lied)으로 유명한 요아힘 라아츠-브루크만(Joachim Raatz-Brockmann)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베를린에서 성악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어 1924년 베를린 폭스오퍼(시민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에 처음 데뷔하였다. 이듬해 그는 뮌헨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에 전속되어 이곳의 중심 멤버로서 거의 40년을 지냈다. 그는 바그너 바리톤으로서 전설적인 공연을 이룩하였으며 다른 역할에서도 놀랄만한 재능으로 찬사를 받았다. 특히 베르디의 역할은 뛰어난 것이었다. 그는 귀족적인 풍모와 맨너로서 주로 왕족이나 늠늠한 기사의 역할에 최적이었다. 예를 들어 ‘돈 카를로’의 필립 왕, ‘팔레스트리나’에서의 보로메오 추기경 역할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유명한 역할은 한스 작스(뉘른베르크의 명가수)였다. 1936년 토스카니니의 지휘아래 잘츠부르크에서 한스 작스를 맡은 것은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명연주였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계속 오페라 무대에 등장하여 팬들을 열광케 하다가 1967년, 74세로서 뮌헨 오페라에서 은퇴하였고 그로부터 13년 뒤인 1980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성실한 음악인이었다. 바바리아에서 40년 근속한 것만 보아도 그의 성실함을 알수 있다.
'팔레스트리나'에서 보르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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