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바그너 바리톤의 황태자 Herbert Janssen (헤르베르트 얀쎈)

정준극 2008. 3. 25. 09:55
 

바그너 바리톤의 황태자 Herbert Janssen (헤르베르트 얀쎈)

  


독일 출신의 미국 바리톤인 헤르베르트 얀쎈은 베를린에서 법률을 공부한후 1차대전 중에는 장교로 복무하였으며 전쟁이 끝나자 성악에 뜻을 두어 오스카 다니엘(Oskar Daniel)에게서 본격 배웠고 이어 1922년,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슈레커(Schrecker)의 ‘보물발굴’(DerSchatzgräber)에서 헤롤드를 맡아 오페라 바리톤으로 데뷔하였다. 그는 베를린 슈타츠오퍼에 1938년까지 16년간 바리톤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바그너뿐만 아니라 베르디, 그리고 프랑스 오페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비엔나에 자주 등장하였고 멀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방문하였다. 그는 특히 바그너의 비교적 가벼운 바리톤 역할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쿠르베날(Kurwenal), 볼프람, 암포르타스, 군터, 텔라문트, 코트너(Kothner), 돈너(Donner), 헤르루퍼(Heerrufer)등은 그의 단골 역할이었다. 그러던중 나치는 그가 순수 독일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독일을 떠나도록 강요했다. 1938년 그는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곧 메트로에 전속하게 되었고 1952년까지 주역 바리톤으로서 머물렀다.

 

보탄

 

메트로에 있을 때인 1943년, 프리드리히 쇼르(Friedrich Schor)가 은퇴하게 되자 야쎈은 그를 대신하여 보탄(Wotan), 한스 작스(Hans Sachs)와 같은 무거운 바리톤 역할을 마지못해 맡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그의 음성과는 충분히 맞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음성이 세련미를 잃고 있으며 고음에서는 자꾸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무거운 바그너 역할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베르디와 같은 이탈리아 바리톤이 자기에게 적성인 것을 깨닫고 이후부터는 주로 아리아를 부르는 리사이틀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말년에는 성악 코치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1965년 뉴욕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얀쎈이 남긴 음반중 백미는 ‘방랑하는 화란인’이다. 그는 이 역할을 풍부함과 따뜻함으로 불렀지만 그보다도 자기의 유일한 스타일, 즉 리더를 부르는 것 같은 순수함으로 불렀다. 그의 메짜보체는 진정으로 뛰어났다. 그의 가곡 레코딩은 진정한 보물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지만 오페라 아티스트는 음반을 남긴다.

 

군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