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카리스마의 바리톤 Simon Keenlyside (사이몬 킨리사이드)

정준극 2008. 3. 25. 10:17

카리스마의 바리톤 Simon Keenlyside (사이몬 킨리사이드)

 

바리톤 사이몬 킨리사이드


사이몬 킨리사이드(Simon Keenlyside)는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바리톤이다. 킨리사이드는 1959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이몬드는 이올리안 4중주단의 제2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어머니 앤은 음악가는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가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나드 히르슈였다. 음악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여덟살 때에 캠브릿지의 성요한대학 합창단의 소년 대원으로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킨리사이드의 소년 시절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합창 연주회에 참여하거나 음반을 취입하는 일로 한가할 틈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정식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서 코브햄에 있는 리드학교에 들어갔고 그 후에는 캠브릿지 대학교에 다녔다. 킨리사이드는 캠브릿지에 다닐 때 동물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분야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그후 성요한대학 합창 지휘자로 갔다가 만체스터의 왕립북부음악대학(Royal Northern College of Music)에서 성악을 본격 공부했다.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 세계초연


킨리사이드의 첫번째 공식 오페라 바리톤으로서의 데뷔는 1987년 왕립북부음악대학에서 공연한 마스네의 '마농'에서 레스꼬를 맡은 것이었다. 오페라 잡지들은 킨리사이드를 눈여겨 보고 '놀랄만큼 완성된 바리톤'이라면서 전도가 유망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따듯하고 청명한 바리톤으로 오페라 성악가의 재능이 충분하다'는 평을 받았다. 킨리사이드는 그 전해에 리챠드 타우버 상을 받아서 잘츠부르크에 가서 공부를 계속할수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생활비와 학비가 부족하여서 4개월이 지난 후에 잘츠부르크를 떠나야 했다. 이때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의 루돌프 크놀 교수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서 무료 레슨을 해주었다. 크놀 교수는 킨리사이드에게 이탈리아 오페라에 도전하라고 권장하였다. 그러나 아직 어리기 때문에 우선 독일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킨리사이드가 오페라 성악가로서 국제무대에서 처음 데뷔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알마비바 백작을 맡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킨리사이드라는 이름은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킨리사이드는 이듬해부터 여러 오페라 극장으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다. 가장 연고가 있었던 곳은 스코티쉬 오페라였다. 킨리사이드는 그곳에 1994년까지 머물면서 수많은 오페라에 출연하였다. 예를 들면 '라 보엠'의 마르첼로, '메리 위도우'의 다닐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의 할레퀸(어릿광대), '여자는 다 그래'의 구글리엘모,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피가로, '빌리 버드'의 빌리 버드, '마술피리';의 파파게노, '사랑의 묘약'의 벨코레였다.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


킨리사이드는 스코티쉬 오페라에 있는 동안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실비오),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구글리엘모), 웰쉬 내셔널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제네바, 파리, 시드니 등에서 오페라에 출연하였다. 글린드본 음악제에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1993년이었고 메트로폴리탄의 데뷔는 1996년이었다. 킨리사이드는 그야말로 쉴새 없이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파리의 오페라에서부터 비엔나 슈타츠오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이 프로그램에 적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킨리사이드는 21세기 오페라 중에서 토마스 아데스의 '템페스트', 로린 마젤의 '1984' 등의 초연에 출연하여서 프로스페로(템페스트), 윈스턴 스미스(1984)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2010년에 메트로폴리탄에서 새로 제작한 '돈 카를로스'에서 로드리고의 역할을 맡은 것은 대단한 찬사를 받은 것이었다. 이때 돈 카를로스는 로베르토 알라냐가 맡았다. 킨리사이드는 2017년 6월에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새로운 연출로 제작된 드비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에서 골러드를 맡은 것은 그가 비단 이탈리아 오페라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현대 인상주의 오페라에도 깊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플레아와 멜리상드'에 출연했던 바로 그날 오후에 킨리사이드는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캄머쟁거에 타이틀을 수여받았다. 슈타츠오퍼의 살롱에서였다. 그리고 영국 정부로부터는 CBE(대영제국 훈장)를 받았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피가로


킨리사이드는 수많은 음반 취입에도 참여하였다. 벤자민 브리튼, 에미뉘엘 샤브리에, 모리스 뒤뤼플레, 헨리 퍼셀등 대단히 폭넓은 레퍼토리였다. 킨리사이드는 리트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하이페리온 레코드의 슈베르트 전집에서 다섯번째 음반과 슈만 전집에서 두번째 음반은 그의 음성에 의한 것이다. EMI 클래식스에서는 토마스 아데스의 '템페스트'의 세계 첫 음반 취입에 참여하였고 2007년에는 소니 뮤직이 '오페라 이야기'(Tales of Opera)라는 타이틀로 킨리사이드의 리사이틀 디스크를 내놓았다. 킨리사이드는 로열 발레단의 댄서인 제나이데 야노브스키(Zenaide Yanowsky)와 결혼하였다. 지금까지 킨리사이드의 오페라 역할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이많은 역할을 모두 소화했으니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1984'의 윈스턴 스미스,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의 할레퀸, '아르미드'의 우발데,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피가로, '빌리 버드'의 빌리 버드와 도날드, '라 보엠'의 마르첼로, '브리세이'(Briseis)의 케이트치스트, '카르멘'의 모랄레스, '라 체네렌톨라'의 단디니, '여자는 다 그래'의 구글리엘모, '돔 세바스티안'의 아바얄도스, '돈 조반니'의 돈 조반니, '돈 카를로스'의 포사와 플레미쉬 사절대표, '사랑의 묘약의 벨코레, '유진 오네긴'의 오네긴, '활슈타프'의 미스터 포드, '파우스트'의 발렌틴과 바그너, '박쥐'의 닥터 활케, '햄릿'의 햄릿, '터리드의 이피제니'의 오레스트, '맥베스'의 맥베스, '티레지아의 유방'의 젠담, '피가로의 결혼'의 알마비바 백작,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야경, '마농 레스꼬'의 레스꼬,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의 오르페오, 베르디의 '오텔로'의 몬타노, '팔리아치'의 실비오,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플레아와 골라우드, '피터 그라임스'의 네드 킨, '스페이드의 여왕'의 엘레츠키 공자, '루크레티아의 능욕'의 타르퀴니우스, '리골레토'의 리골레토, '아서 왕'(Le Roi Arthus)의 아서,

'탄호이저'의 볼프람,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뱃사공, '투란도트'의 핑, 프로코피에프의 '전쟁과 평화'의 안드레이, '보체크'의 보체크, '마술피리'의 파파게노 등이다.

 

'햄릿'에서 타이틀 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