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황금의 바리톤 Robert Merrill (로버트 메릴)

정준극 2008. 3. 25. 10:16
 

황금의 바리톤 Robert Merrill (로버트 메릴)

 

 

미국의 로베트 메릴(1917-2004)은 황금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다. 그가 부른 ‘프로벤자 바다와 땅’(Di Porvenza il mar il suol)은 황금과 같이 빛나고 귀중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음성은 장대하고 기품 있는 것이었다. 그는 진정한 신사였다. 관중들에게 헌신하는 공연을 하였다. 뛰어난 유머 감각으로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성악가로서 미국예술공로훈장을 받았으며 (1993) 프랭클린 루즈벨투, 해리 트루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른 영광을 가졌다. 로베트 메릴은 뉴욕 양키스의 오랜 팬이었다. 그는 1986년 뉴욕 양키즈경기장의 시즌 오프닝때 처음으로 미국 국가를 불렀고 시구를 하였으며 그같은 전통은 거의 3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뉴욕 양키스 팬으로서 로버트 메릴을 모른다면 말이 안되었다. 그는 대중음악 가수인 프랑크 시나트라, 루이 암스트롱 등과도 함께 노래를 불렀다. 프랑크 시나트라는 로버트 메릴의 목소리는 국보급이므로 영원히 간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런 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랑의 묘약'에서 벨코레. 이런 미남이라면 네모리노도 상대가 될수 없었을 것이다.


메릴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1917년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모리스 밀러(Morris Miller)였다. 혹자는 그가 1919년에 태어났다는 주장을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1917년을 주장하였다. 뉴욕 발할라(Valhalla)에 있는 켄시코 묘지의 묘비에도 1917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는 구두행상인 아브라함 밀러로서 폴란드의 유태계 이민 가정이었다. 어머니 릴리안(Lillian)은 폴란드에서 오페라에 출연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메릴은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오페라 성악가로서의 길에 접어 들었다. 메릴은 어릴 때에 말더듬는 습관이 있었으나 성악을 공부하고부터 그 습관이 사라졌다. 메릴은 당대의 바리톤 리챠드 보넬리(Richard Bonelli)가 메트로에서 '일 트로바토레'의 루나 백작을 부르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나도 저분처럼 훌륭한 바리톤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다. 메릴은 한때 야구선수를 했다. 메릴은 투수로서 경기에 나가 번 돈을 모두 바리톤 레슨에 지불했다.

 

 

리골레토

 

메릴의 부드러운 저음은 라디오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다. 마치 빙 크로스비와 같은 크루너(Cronner)였다. 메릴은 방송에 출연하면서 한 때 이름을 메릴 밀러(Merrill Miller)라고 바꾼 일이 있다. 그후 보르슈트 벨트(Borscht Belt)유원지등에서 노래를 부를 때 우연히 모 게일(Moe Gale)이라는 매니저를 만나게 되었다. 메릴은 모 게일의 주선으로 레이디오 시티 음악홀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교향악단과 협연을 가졌다. 1946년이었다. 유명한 소프라노 루치아 알바네세(Lucia Albanese)와 함께 '라 트라비아타'를 불렀고 195년에는 헤르바 넬리(Herva Nelli)와 함께 '가면 무도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두번의 공연 실황은 모두 취입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메릴은 1944년 뉴저지의 뉴와크(Newark)에서 '아이다'로서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유명한 조반니 마르티넬리(Giovanni Martinelli)와 함께 출연하였다. 그로부터 메릴의 기나긴 오페라 무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돈 조반니


이듬해인 1945년 메릴은 메트로에 진출하였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제르몽이었다. 대단한 박수를 받았다. 메릴은 메트로의 고정 바리톤이었다. 그러다가 1952년 메릴은 뮤지컬 코미디 영화인 Aaron Slick from Punkin에 출연하였으나 이 때문에 메트로의 음악총감독인 루돌프 빙(Rudolf Bing)과 불화를 빚게 되었다. 루돌프 빙은 '뮤지컬 영화 좋아하네!'였고 메릴은 '아무려면 어때! 노래는 다 같은 노래지!'라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로서 메릴은 잠시 메트로를 떠나 있었다. 메릴은 1960년 바리톤 레오나드 워렌(Leonard Warren)이 메트로의 무대에서 뜻하지 아니하게 숨을 거두자 이후 메트로의 바리톤 주역으로서 여러 역할을 찬란하게 맡아했다. 당시 타임지는 '메트로의 가장 훌륭한 바리톤'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메릴이 테너 유씨 비욜링과 함께 부른 '진주잡이'에서의 테너-바리톤 듀엣은 BBC의 '당신의 베스트 노래 100곡'에서 항상 1위를 차지했으며 ABC의 '클라씩 100 오페라'에서도 1위였다. 호주에서의 인기 조사에서는 '진주잡이'의 듀엣이 '없으면 살기조차 싫은 곡'(could not live without)으로 선정되었다. 실로 유씨 비욜링과의 듀엣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듀엣으로 간주되었다. 메릴은 1976년 메트로에서 은퇴하였다. 로버트 메릴은 메트로폴리탄에서 21개의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출연하였으며 총 오페라 공연회수는 769회였다.

 

메릴은 비교적 늦게 바리톤에 입문한 성악가이다. 그러나 일단 바리톤으로 인정받은후 그의 활동은 화려했다. 양키구장에서 야구 시합이 있을 때에 '성조기여 영원하라'라는 미국 국가를 부르는 것은 메릴의 몫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양키구장에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른 것은 1969년이었다. 이후 매 야구 시즌마다 메릴을 초청하여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듣는 것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하긴 메릴도 한때 투수 생활을 했었다. 메릴은 엉클 샘의 모습을 본따 별과 줄이 들어 있는 의상을 입고 힘차게 노래를 불러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그의 백넘버는 1 1/2이었다. 특히 1979년 양키의 포수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음날 열린 양키 구장의 경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메릴이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를 때 함께 눈물을 흘렸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는 로버트 메릴

   

메릴은 1952년 소프라노 로베르타 피터스(Roberta Peters)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두 아들을 두었다. 메릴은 로베르타 피터스와 이혼후 피아니스트인 마리온(Machno Marion)과 결혼했다. 메릴은 두 편의 비망록을 썼다. 1965년에 내놓은 once More from the Beginning과 1976년에 내놓은 Between Acts이다. 1978년에는 The Divas라는 책을 공동저술하기도 했다. 메릴은 뉴욕 뉴 로셀르(New Rochelle)의 자책에서 별세했다. TV를 통해 2004년 월드 시리즈인 보스턴 레드 삭스와 세인트 루이스 카디날과의 1차전을 보다가 잠자는 듯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