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1천번의 피가로 Riccardo Stracciari (리카르도 스트라키아리)

정준극 2008. 3. 25. 10:14
 

1천번의 피가로 Riccardo Stracciari (리카르도 스트라키아리)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리카르도 스트라키아리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피가로를 1천회 이상이나 맡아 공연한 대단한 바리톤이다. 그의 Largo al factotum은 당대의 명연주로 꼽히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오페라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해주고 있다. 1875년 볼로냐 부근의 카살레키오 디 레노라는 곳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공학도였으나 대학 졸업후 방향을 바꾸어 볼로냐음악원에서 성악을 전공한 특이한 케이스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석상조각가였으므로 아들에게 공학을 전공토록 권유했었다. 불로냐음악원을 졸업했지만 그는 아직도 장래방향을 확정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1899년, 24세 때에 페로시(Perosi)의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솔리스트로 출연한 것이 성악가로의 길을 걷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첫 오페라 데뷔는 라 보엠에서 마르첼로였다. 그후 몇 년동안 그는 마르첼로로서 이탈리아 전지역의 무대에 섰다. 그러나 마르첼로만으로 만족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자기의 레퍼토리를 넓히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이탈리아 바리톤으로서 가장 인기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라 스칼라 데뷔는 1905년 아모나스로(아이다)로였다. 이듬해에는 메트로에서 제르몽(라 트라비아타)으로 데뷔하였다. 디바 셈브리히(Sembrich)와 디보 카루소가 함께 출연한 공연이었다. 코벤트 가든에서는 리골레토를 맡아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러시아와 남미에서도 이탈리아 바리톤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시카고 데뷔는 1917년이었다. 시카고에서의 피가로는 더 할수 없이 성공이었다. 유쾌하면서도 격렬한 성격의 피가로를 표현하여 관중들의 가슴속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었다. 시카고 공연은 이후 세계 곳곳에서 피가로만 가지고 1천회 이상을 공연하는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그는 공식적으로 1936년, 61세 때에 무대에서 은퇴하였다. 그러나 1944년까지 일반 공연에 출연하는 노익장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그후 10여년을 후진양성을 하며 지내다가 1955년 세상을 떠났다. 보리스 크리스토프(Boris Christoff)는 그의 제자중 한사람이다. 스트라키아리는 따듯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성에 성량이 풍부하였다. 그의 순수한 레가토(음을 끊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가는 테크닉)는 일품이었다. 그는 진정한 벨칸토 바리톤으로서 특히 중음에서는 비단과 같은 부드러움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