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사람들

신성로마제국의 알파와 오메가

정준극 2008. 3. 27. 21:53

[신성로마제국이 뭐 길래?]

로마제국의 콘스탄틴(307-337: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D324년에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콘스탄틴 대제(大帝)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이름을 콘스탄타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이라고 고쳤다. 콘스탄틴 대제가 세상을 떠난 후 로마제국은 동서로 나뉘었다. 동로마제국은 자기들이야 말로 진정한 로마 가톨릭을 승계했다고 하여 정교회(오토독스)라고 불렀다. 나중에 이를 동방정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서로마제국은 그들대로 로마가톨릭교회의 정당한 승계자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서로마제국에는 아직도 로마교황이 버티고 있었으니 정당한 승계자라고 주장할만 했다. 동로마제국은 점점 강대해 졌으나 서로마제국은 비틀거렸다. 496년 로마의 주교(교황)는 프랑크 왕국의 메로비(Morove)의 손자 클로비스(Clovis)와 협정을 맺고 실존하지도 않는 서로마제국을 메로비왕가가 통치하도록 권한을 넘겨주었다. 로마의 주교는 메로비 가문의 클로비스(샤를르마뉴 대제)를 ‘새로운 콘스탄틴 황제’ 또는 '새로운 아우구스투스 황제'라고 불렀다. 이를 신성로마제국의 시초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말은 962년까지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가 교권정치가 부활한 962년, 독일왕 헨리1세의 아들 오토1세가 제후들을 통합하여 세력을 강화하고 스스로 맹주(盟主)에 올라 신성로마제국을 선포함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토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첫 황제이다. [독일국가 국왕 헨리1세(하인리히1세)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하인리히 1세이다.]

 

오페라 '로엔그린'의 한 장면. 로엔그린과 엘자 공주. 가운데는 하인리히(헨리) 1세. 오토 대제의 아버지이다.


프랑스 메로비(또는 메로빙) 왕가의 혈통이 신성로마제국에 합류하게 된것은 110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른 헨리5세(앙리5세) 때였다. 11세기 초반, 프랑스 메로빙 왕가의 유스타세2세에게는 고드프로이 드 브이용(1061-1100)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는 1099년에 시온수도회를 세워 기독교 전파에 헌신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고드프로이 드 브이용은 독실한 신앙으로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또 ‘성배의 수호자’라는 칭호로 불렸다. 그러던 차에 고드프로이 드 브이용의 여동생인 알렉스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헨리4세(1056-1106)와 결혼하여 메로빙 혈통이 신성로마제국에 혼합되었다. [다빈치 코드에 의하면 메로빙의 혈통은 멀리 예수 그리스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신빙성은 없는 주장이다. 아무튼 메로빙 혈통이 합스부르크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가 유럽을 제패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샬레마뉴 대제가 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지고 있다. 800년.


신성로마제국은 1254년부터 1272년까지 18년동안 정치적으로 공백기간이었다. 황제를 선출하지 못하고 분쟁을 계속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기간을 궐위시대(Interregum)라고 부른다. 이 기간중에는 네덜란드 왕인 윌리엄과 로마 왕(King of Romans)이라는 타이틀로 선출된 리챠드(Richard)가 제국을 통치하였다. 이때부터 신성로마제국은 인접 강대국들의 입김과 간섭으로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신성로마제국에 대결해온 프랑스는 물론이고 합스부르크의 일원이었다가 프랑스의 영향을 받게된 스페인도 신성로마제국과 대결하기 시작했다. 대결의 쟁점은 주로 왕위 계승권이었다. 합스부르크에 스페인의 혈통이 합류하게 된것은 카를로스5세(1519-1556) 시절부터였다. 이후 오늘날 후안 카를로스 국왕에 이르기까지 합스부르크의 혈통이 스페인 왕실에 이어져 내려왔다.

 

신성로마제국의 실제 첫 황제인 오토 대제. 베를린의 리하르트 바그너 플라츠 지하철역 모자익


1806년 나폴레옹의 득세로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시스2세(오스트리아제국의 프란츠1세)황제가 마침내 퇴위함으로서 신성로마제국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이 종료되는 의식은 비엔나의 암 호프(Am Hof)에서 거행되었다. 암 호프는 현재 소방본부이며 소방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암 호프는 1156년 비엔나가 바벤버그(Barbenberg)왕조의 통치아래 들어온 직후, 야소미어고트(Jasomirgott)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하인리히2세(Heinrich II)가 고대 로마군 병영이 있던 곳에 지은 궁전이다.

 

신성로마제국 마지막 황제인 프란츠2세(비엔나 미술사박물관-보물전시실) - 그는 1806년 신성로마제국의 문을 닫고 오스트리아제국을 출범하여 프란시스 1세(프란츠 1세)활제로서 재임하였다.

 

* 신성로마제국의 알파와 오메가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신성로마제국 좀 더 알기'란에 별도로 설명되어 있으므로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