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사람들

오스트리아 열왕기: 바벤버그와 합스부르크 왕조

정준극 2008. 4. 6. 05:57
[오스트리아의 열왕기]

바벤버그의 레오폴드1세부터 합스부르크의 카를1세까지 942년의 행로


미하엘라 론쪼니의 풍자 뮤지컬 '합스부르크의 사람들' 포스터. 마리아 테레자, 루돌프 1세, 엘리자베트 왕비, 프란시스 1세 황제 등의 모습을 볼수 있다.

 

비엔나를 중심으로한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로마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스트리아가 정작 나라의 형태로서 출범한 것은 976년 현재의 오스트리아 일대에서 일어난 바벤버그(Babenberg) 왕조가 바바리아 공국의 변경백(邊境伯: Margrave)으로 인정받은 때부터였다. 그 이전까지 비엔나를 중심으로한 지역은 바바리아의 영향이 미치는 오스트마르크(Ostmark)라는 지방이었다. 바바리아의  아르눌프(Arnulf) 공작은 아들 레오폴드(Leopold)를 ‘오스트마르크 변경백’으로 임명하고 ‘아들아! 변방의 지방이지만 잘 좀 다스리고 발전시켜 보아라!’라고 당부하였다. 오스트리아를 유럽의 변방으로 생각했던 것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동부는 게르만이나 라틴민족이 아닌 동양민족(예를 들면 헝가리의 마쟈르족)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레오폴드로부터 오스트마르크는 나라다운 면모를 갖추고 군주(영주)를 갖게 되었다. 오스트마르크라는 단어는 ‘동쪽 경계지역’(Eastern Mark)이라는 뜻이다. 이교도들과 경계를 마주할수 있는 ‘동쪽 끝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동쪽의 나라: 외스터라이히: Oesterreich)라는 단어는 오스트마르크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오스트마르크의 동쪽(현재의 헝가리 일대)은 야만인이라고 생각되는 아시아계의 마쟈르(Magyar)민족이 점거하고 있었다.

 

오스트마르크에 변경백을 처음 둔 것은 790년경에 위대한 샬레마뉴(Charlemagne) 대제(大帝) 시기였다. 그러다가 오스트마르크 지방은 거의 1백년 후인 907년 마쟈르 민족이 침략으로 완전히 파괴된 일도 있었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955년 바바리아의 오토1세가 이 지역을 다시 정복하였고 976년에는 오토2세가 오스트마르크에 요새와 마을을 다시 설치하여 마쟈르(헝가리)에 대한 완충지대로 만들었다. 오토2세는 바바리아 공작 아르눌프(Arnulf)의 아들(일설에는 손자) 레오폴드1세를 오스트마르크의 변경백으로 임명하는데 동의하였다. 이로써 레오폴드1세에 의한 바벤버그 왕조가 시작되었다. 레오폴드1세는 976-994년간의 18년동안 오스트마르크를 통치하였다.

 

비엔나 라트하우스파르크에 있는 레오폴드 1세의 기념상. 바벤버그 왕조를 시작한 인물이다. 

                           

12세기에 들어서서 오스트마르크 변경백의 위상은 상당히 높아졌다. 바벤버그 가문이 혼인을 통하여 바바리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왕실과 깊은 유대를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벤버그의 사람들은 왕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오스트마르크의 변경백이라는 지위에 대하여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당시 오스트마르크의 변경백은 나중에 야소미어고트(Jasomirgott)왕으로 알려진 하인리히2세(Heinrich II)였다. 사족이지만 하인리히2세를 야소미어고트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너무나 신앙이 독실하여 매사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십니다!’(Ja! so, mir gott!)라고 버릇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재검토의 결과, 독일은 오스트마르크를 하나의 별도국가로 간주하여 변경백(Margrave)이라는 호칭을 중지하고 공작(Duke)으로 격상하였다. 대체로 유럽의 왕실에서는 공작 및 공작부인(공녀)이라는 타이틀을 왕족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경백이라는 칭호를 공작으로 격상한 것은 바벤버그 가문이 왕족과 대등한 가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13세기 초반, 바벤버그의 프리드리히2세가 후사가 없이 전사하자 너도나도 오스트마르크의 공작계승권을 주장하여 일대 소란이 벌렸다. 이때 스위스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1세가 요행으로 오스트마르크의 공작으로 선출되는 행운을 얻었다. 루돌프1세는 1276년 오스트마르크에서 보헤미아의 오토카르(Ottokar)를 몰아내고 오스트마르크와 스티리아(Styria)의 땅을 합병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의 소관으로 만들었다. 몇 년후 루돌프1세는 아들들을 위해 양위를 하고 영토를 나누어 주었다. 큰아들 알브레헤트1세(Albrecht I)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스트마르크트(현재의 오스트리아 일대)의 군주가 되었고 또 다른 아들인 루돌프3세에게는 보헤미아를 맡겼다.

 

 

'야소미어고트'라는 별명으로 불린 하인리히2세. 비엔나에 처음으로 암 호프에 궁전을 짓고 정착하였다.


합스부르크가 이렇게 세력을 강화하자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럽의 왕실들은 종전에는 ‘합스부르크! 그거 별거 아냐!’라면서 오스트마르크 지역을 통치할 후보자가 누가 되든지 별로 관심두지 않았으나 이젠 단단히 경계해야 할 가문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때에 오스트마르크의 알브레헤트1세의 아들인 프리드리히1세가 독일의 막강한 루드비히 5세에게 ‘당신만 왕이라는 타이틀을 해먹느냐?’면서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반기를 든 사건이 일어났다. 루드비히 5세는 당장 프리드리히1세를 체포하여 야단을 친후 ‘자네한테 오스트마르크를 맡겼더니 안되겠어! 내가 좀 들여다 봐야 겠어!’라며 오스트리아를 공동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합스부르크는 독일 등 인접 강국에 의해 미운털이 박히게 되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왕조는 발전을 거듭하였다. 잘츠부르크 일대에서 나오는 소금이 경제에 큰 도움을 주었고 더구나 지리적으로 동서양이 교차하는 곳에 있기 때문에 무역중계로서도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니 독일 아니라 독일 할아버지라고 해도 오스트마르크트를 업수이 여기지 못했다. 그후 스위스의 산간에서 칩거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바벤버그 가문을 이어 받으면서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오스트마르크라는 명칭 대신에 오스트리아(외스터라이히)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하였고 1453년 프리드리히5세(Friedrich V)때에는 '공작(Duke)이 뭐냐? 개나 소도 공작인데...우린 대공(Archduke)이라고 하겠다'면서 오스트리아의 군주를 대공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수백년, 오스트리아의 군주는 신성로마제국의 일원으로서 계속 대공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물론 대부분 오스트리아 대공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하였으므로 오스트리아 대공은 사실상 황제였다. 그러다가 1804년 프란츠2세(프란시스2세)가 나폴레옹에 의한 신성로마제국의 종말을 염려하여 오스트리아를 제국(Empire)으로 선포함으로서 오스트리아의 군주는 비로소 황제의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2세는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선포하고 자신을 프란츠1세(프란시스1세)라고 불렀다. 프란츠 2세(프란시스 2세)는 프랑스와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이 있었으며 더구나 나폴레옹이 황제라고 차칭하며 대관식을 갖자 '웃기고 있네. 황제는 무슨 얼어죽을 황제. 내가 진짜 황제이다'라며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가진 군주는 프란츠1세와 그의 뒤를 이은 페르디난트1세, 프란츠 요셉1세, 카를1세의 네명뿐이다. K.u.K라는 말은 오스트리아가 제국으로 된 이후부터 사용된 것이다. 즉,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Kaiser) 및 헝가리 왕(Koenig)을 의미한다.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선포한 프란츠(프란시스)1세(프란츠2세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다시 초창기 합스부르크로 돌아가서, 루돌프1세에 의해 문을 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시대는 그의 손자인 알브레헤트2세 때부터 영토가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알브레헤트2세는 카린티아(Carinthia)를 합스부르크의 영토로 만들었으며 그의 아들 루돌프4세는 별도의 자치공국이었던 티롤(Tyrol)을 오스트리아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영토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소유권이 왔다갔다 할수 있는 것이니, 루돌프4세는 동생들의 성화에 못이겨 바로 아래의 동생 알브레헤트3세에게는 오스트리아를 가지라고 했고 또 다른 동생인 레오폴드3세에게는 카린티아, 스티리아, 티롤을 가지도록 했다. 그리하여 모처럼 확보한 대영토가 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할 상태는 후대에 이르기까지 상당기간  계속되었다. 그런데 남들 보기에 민망스러웠던지 비록 둘로 나뉘어졌지만 모두 ‘오스트리아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알브레헤트3세의 손자인 알브레헤트5세에 이르러 합스부르크의 위상이 달라졌다. 알브레헤트5세는 룩셈부르크 황제 지기스문트(Sigismund)의 딸 엘리사베트(Elisabeth)와 결혼했다. 결과적으로 이 결혼으로 알브레헤트5세는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이 되었고 잠시 동안이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다름없는 칭호인 독일 왕이라는 타이틀도 가졌다. 알브레헤트5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복자인 라디슬라우스(Ladislaus)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라디슬라우스는 신성로마제국을 대표하는 독일 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는 것이 힘에 겨웠다. 그래서 보헤이마와 헝가리의 왕으로만 만족하였다. 하지만 한참후 레오폴드3세의 어떤 후손이 1440년 프리드리히3세로서 다시 독일 왕으로 선출되어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게 되었다. 사족: ‘독일 왕’이라는 타이틀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로마교황에 의한 대관식을 갖지 않은 경우에 부르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합스부르크 가문을 중흥시킨 루돌프1세

                

프리드리히 3세(프레데릭 3세)는 분열되었던 합스부르크의 영토를 한데 묶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453년부터 공작이라는 타이틀 대신에 대공(Archduke)이라는 타이틀로 격상하여 사용하였다. 프레데릭3세는 그의 아들 막시밀리안(Maximilian)이 부르군디(Burgundy) 및 네덜란드(현재의 벨기에 지역)의 왕위 후계자인 마리(Marie) 공주와 결혼토록 했다. 이로써 합스부르크는 저 멀리 대서양에 면한 저지대쪽에 제2의 오스트리아를 만들었다. 이를 마치 '언어의 섬'처럼 '오스트리아 아일랜드'라고 부른다. 이와 함께 막시밀리안은 아들 필립(Philipp)을 스페인(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인 후아나(Juana)공주와 결혼토록 하여 결과적으로 카스티야의 필립1세가 되도록 했다. 후에 필립1세의 아들이며 막시밀리안의 손자인 카를(샤를르: 카를로스)은 카를로스 1세로서 스페인 왕이 되었으며 샤를르 5세(칼 5세)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어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나폴리, 시실리, 그리고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합스부르크의 기치를 높이게 되었다. 필리핀은 필립1세의 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이지만 혹자는 필립 1세의 아들인 저 유명한 필립 2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라는 주장이다.

 

비엔나의 슈테판스돔에 있는 프레데릭 3세의 대리석관

                             

샤를르5세는 제국의 영토가 너무 넓다고 생각했는지, 또는 동생 페르디난드를 생각해서였는지 세상을 떠날 즈음에 오스트리아를 동생 페르디난드1세에게 무료로 분양하였고 스페인은 아들 필립2세에게 상속하였다. 페르디난드는 보헤미아-헝가리의 안나 공주와 결혼을 통하여 1526년부터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좌까지 차지하였다. 페르디난드는 1558년에 형 샤를르5세(카를로스5세)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스페인의 국왕이 된 필립 2세는 철권정치로 유명한 그 필립(펠리페)2세로서 오페라로서도 유명한 돈 카를로(Don Carlo)의 아버지이다.  필립2세는 한때 영국여왕 메리와 결혼하였다. 메리는 저 유명한 헨리8세의 첫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의 딸로서 '블라디 메리'라는 별명의 여인이다.

 

페르디난드1세의 후대들은 1806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독일국가들을 통치했으며 1918년 1차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헝가리 및 제국의 여러 영토를 통치하였다. 1804년 오스트리아 대공이며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츠2세(프란시스2세)는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선포하고 프란츠1세(프란시스1세)로서 오스트리아제국의 첫 황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후인 1806에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의 유럽 개편으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이상이 1차대전후 공화제로 전환되기 전까지의 오스트리아의 대략적인 연혁이다. 이제 거의 1천년에 이르는 오스트리아 역사속의 군주 리스트를 정리해본다. 재미야 없겠지만 만일 오스트리아 역사에 상당한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시간을 내어 훑어 볼만한 명단이다. 년도는 재위기간이다. 자료에 따라 재위 기간이 다를 경우가 있다. 어떤 군주는 대관식을 가진 해부터를 재위기간으로 보았고 어떤 군주는 선임자가 세상을 떠난 해부터를 재위기간으로 보는등 관점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연방문장

 

[바벤버그 왕조의 등장: 독일의 오스트마르크 변경백: 1156년부터는 오스트리아 공작]

 

976-994    레오폴드1세(영명 왕): The Illustrious. 바바리아 공작 아르눌프(Arnulf) 의 아들. 오스트마르크의 마그레이브(변경백)으로 임명됨.

994-1018   하인리히1세(반역 왕): The Rebel. 레오폴드1세의 아들

1018-1053  아달베르트(승리 왕): The Victorious. 레오폴드1세의 아들.

1053-1075  에른스트(용맹 왕): The Strong. 아달베르트(Adalbert)의 아들. 작소니(Saxony)에게 피살됨.

1075-1095  레오폴드2세(핸섬 왕): The Handsome. 에른스트(Ernst)의 아들

1095-1136  레오폴드3세(성자 왕): The Saint. 레오폴드2세의 아들

1136-1141  레오폴드4세(관용 왕): The Generous. 레오폴드3세의 아들

1141-1177  하인리히2세(야소미어고트): Jasomirgott. 레오폴드3세의 아들. 1156년부터  오스트리아 공작으로 칭함.

1177-1195  레오폴드5세(능력 왕): The Able. 하인리히2세의 아들

1195-1199  프리드리히1세(가톨릭 왕): The Catholic. 레오폴드5세의 아들

1199-1230  레오폴드6세(영광 왕): The Glorious. 레오폴드5세의 아들

1230-1246  프리드리히2세(호전 왕): The Warlike. 레오폴드6세의 아들. 헝가리와의  전투에서 전사

1246-1247  라디슬라우스(모라비아의): Ladislaus of Moravia. 보헤미아 바클라브2세(Vaclav II)의 아들. 레오폴드6세의 아들 하인리히(Heinrich)의 딸 게르트루트(Gertrud)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 공작(군주)이 됨.

1248-1250  헤르만(베이드의): Hermann of Bade. 베이드의 헤르만4세의 아들.  라디슬라우스의 미망인인 오스트리아의 게르트루트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 공작(군주)이 됨.

1250-1251  프리드리히3세: 헤르만의 아들. 폐위된 후 1268년 탈리아코쪼(Tagliacozzo) 전투에서 처형됨.

1251-1276  오토카르(보헤미아의): Ottokar of Bohemia. 라디슬라우스의 동생. 레오폴드6세의 딸 마르가레테(Margarete)와 결혼. 폐위된 후 1278년 피살됨.


[합스부르크 가문의 등장: 오스트리아 공작: 1453년부터는 오스트리아 대공]

1276-1282  루돌프1세(합스부르크의): Rudolf I of Habsburg. 합스부르크의 알브헤레트4세(Albrecht IV)의 아들. 아들에게 양위후 1291년 사망.

1282-1298  알브레헤트1세: 루돌프1세의 아들. 퇴위후 루돌프1세의 또 다른 아들인 요한(Johann)에게 살해당함.

1282-1283  루돌프2세: 루돌프1세의 아들. 퇴위후 1290년 서거

1298-1307  루돌프3세: 알브레헤트(Albrecht)1세의 아들

1307-1330  프리드리히1세(핸섬 왕): The Handsome. 알브레헤트1세의 아들

1307-1326  레오폴드1세(영광 왕): The Glorious. 알브레헤트1세의 아들

1307-1358  알브레헤트2세(현명 왕): The Wise. 알브레헤트1세의 아들

1307-1327  하인리히(친절 왕): The Friendly. 알브레헤트1세의 아들

1307-1339  오토(친애 왕): The Beloved. 알브레헤트1세의 아들

1339-1344  프리드리히2세: 오토의 아들

1339-1344  레오폴드2세: 오토의 아들

1358-1365  루돌프4세(설립 왕): The Founder. 알브레헤트2세의 아들.

1358-1362  프리드리히3세: 알브레헤트2세의 아들

1358-1395  알브레헤트3세(변발 왕): The Braid. 알브레헤트2세의 아들(오스트리아 통치)

1358-1386  레오폴드3세(능력 왕): 알브레헤트2세의 아들(스티리아, 카린티아, 티롤 통치). 스위스 전쟁때 전사.

1386-1406  빌헬름(야망 왕): The Ambitious. 레오폴드3세의 아들(스티리아 통치)

1386-1411  레오폴드4세(뚱보 왕): The Fat. 레오폴드3세의 아들(티롤, 카린티아 통치)

1386-1424  에른스트1세(강철 왕): The Iron. 레오폴드3세의 아들(스티리아, 카린티아 통치)

1386-1439  프리드리히4세(부유 왕): The Rich. 레오폴드3세의 아들(티롤 통치)

1395-1404  알브레헤트4세: 알브레헤트3세의 아들(오스트리아 통치)

1404-1439  알브레헤트5세: 알브레헤트4세의 아들(오스트리아 통치)

1424-1493  프리드리히5세(평화 왕): The Peaceful. 에른스트1세의 아들(스티리아, 카린티아 통치. 1457년부터 오스트리아, 1490년부터 티롤 통치)

1424-1463  알브레헤트6세(낭비 왕): The Spendthrift. 에른스트1세의 아들(스티리아, 카린티아 통치)

1439-1490  지그문트(Sigmund): 프리드리히4세의 아들(티롤 통치), 양위후 1496년 서거

1440-1457  라디슬라우스(유복자 왕): The Posthumous. 알브레헤트4세의 유복자(오스트리아 통치)

1493-1519  막시밀리안1세(마지막 기사): 프리드리히5세 평화 왕의 아들

1519-1522  카를1세(카를로스5세): Karl I. 막시밀리안1세의 아들 핸섬왕 필립1세의 아들.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와 스페인-합스부르크의 분리]

 

1522-1564  페르디난트1세: 카를1세(샤를르5세: 카를로스5세)의 동생

1564-1576    막시밀리안2세: 페르디난트1세의 아들(오스트리아 통치)

1564-1593    페르디난트2세: 페르디난트1세의 아들(티롤 통치)

1564-1590    카를2세: 페르디난트2세의 아들(스티리아, 카린티아 통치)

1576-1612   루돌프5세: 막시밀리안2세의 아들(오스트리아 통치. 1608년 양위. 1595년부터 티롤 통치) (루돌프2세로도 알려져 있음. 오스트리아대공으로 1576-1608)

1576-1595  에른스트2세: 막시밀리안2세의 아들

1576-1619  마티아스(Matthias):  막시밀리안2세의 아들. 1608년부터 오스트리아 통치. 신성로마제국황제(1612-1619), 모라비아변경백(1608-1619), 헝가리왕(1608-1619), 보헤미아왕(11611-1619)

1576-1618  막시밀리안3세: 막시밀리안2세의 아들. 1612년부터 티롤 통치

1576-1621  알브레헤트7세: 막시밀리안2세의 아들. 1620년부터 티롤 통치

1590-1637  페르디난트3세: 카를2세의 아들. 스티리아, 카린티아 통치

1625-1632  레오폴드5세: 카를2세의 아들. 티롤 통치

1632-1662  페르디난트 카를: 레오폴드5세의 아들. 키롤 통치

1662-1665  지그문트 프란츠: 레오폴드5세의 아들. 티롤 통치. 피살.

1637-1657  페르디난트4세: 페르디난트3세의 아들

1657-1705  레오폴드6세: 페르디난트4세의 아들. (레오폴드6세는 레오폴드1세로도 알려져 있음; 1658-1705)

1705-1711  요셉1세: 레오폴드6세의 아들

1711-1740  카를3세(HRE 샤를르6세): 레오폴드6세의 아들(신성로마제국 황제)


[합스부르크-로트링겐(로레인) 가문의 시작]

 

1740-1765  프란츠1세(프란시스1세). Franz Stefan. 카를3세(샤를르6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로레인(Lorraine)의 레오폴드-요셉(Leopold-Joseph)의 아들.  

1765-1790  요셉2세.  프란시스1세와 마리아 테레자의 아들

1790-1792  레오폴드2세. 프란시스1세와 마리아 테레자의 아들. 요셉2세의 동생. 레오폴드7세라고도 알려져 있음.

1792-1806  프란츠2세(선한 왕). The Good. 레오폴드2세의 아들. 1835년 서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시작: 신성로마제국 소멸]

 

1804-1835  프란츠1세(선한 왕). The Good. 오스트리아의 프란츠2세 대공이었으나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이 와해되자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됨.

1835-1848  페르디난트1세(훌륭한 왕). The Goodly. 프란츠1세의 아들. 1848년에 손자 프란츠(후에 프란츠 요셉1세)에게 양위후 1875년 서거

1848-1916  프란츠 요셉1세. 페르디난트1세의 아들 프란츠의 아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선포. 68년간 통치. 바바리아의 엘리자베트(씨씨)와 결혼. 황태자 루돌프가 자살하자 동생의 아들, 즉 조카인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황태자로 임명하였으나 사라예보에서 피살. 이로서 세계1차 대전이 일어남.

1916-1918  카를1세. 프란츠-요셉1세의 동생인 카를 루드비히의 아들인 오토의 아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마지막 황제. 1차 대전의 종말과 함께 오스트리아가 공화국이 되자 강제 퇴위 당함. 1918년 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로 분할

 

오스트로-헝가리제국의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와 그의 뒤를 이은 칼 1세 황제. 칼1세는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