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구 화보리텐 (Favoriten)
화보리텐 슈트라쎄
화보리텐이라는 명칭은 이 구역에 있던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인 화보리타(Favorita)에서 가져온 것이다. 화보리타는 사냥 숙사였으나 현재는 4구 뷔덴에 속한 중등학교(김나지움)로 사용되고 있다. 비엔나 남쪽 경계의 세관 건물은 화보리텐-리니(Favoriten-Linie: 화보리텐 라인)라고 부르며 부근의 주택들은 화보리텐 라인 뒤편의 정착지(Siedlung vor der Favoriten-Linie)라고 부른다. 이 새로운 정착지는 1874년 비엔나의 제10구로서 합병되었다. 화보리타라는 단어는 ‘총애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아마 화보리타 궁전을 총애하는 여인에게 주기 위해 건설했던것 같다.
화보리텐 구청
제10구 화보리텐의 첫 구청장은 정착지에서 여관을 경영하던 요한 슈토이델(Johann Steudel)이었다. 그는 비록 여관을 경영하는 사람이었지만 화보리텐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여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화보리텐이 비엔나에 속한 이후 산업시설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이후 비엔나는 4강이 분할하여 통치하였다. 화보리텐은 러시아(구 소련)의 구역이었다. 194년 화보리텐은 인근의 로트노이지들(Rothneusiedl), 오버라아(Overlaa), 운터라아(Unterlaa)를 받아들여 확장되었다.
안톤스플라츠의 안톤스키르헤
화보리텐은 서쪽으로 마이들링(Meidling), 남서쪽으로 리징(Liesing), 북쪽으로 마르가레텐과 뷔덴, 동쪽으로는 짐머링(Simmering)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비엔나 남부역(Suedbahnhof)에서는 비너베르크(Wienerberg: 비엔나 산)와 라어르 베르크(Laaer Berg)를 거쳐 남쪽으로 리징탈(Liesingtal: 리징 계곡) 방향으로 가는 기차가 운행된다. 리징탈에는 남부 오스트리아 마을들인 헨너스도르프(Hennersdorf), 레오폴드슈타트(Leopoldstadt), 슈베하트(Schwechat)가 있다. 라어르 베르크와 관련하여서는 두 군데의 명소가 있다. 하나는 보헤미아 프라터(Boehmischer Prater)이며 다른 하나는 쿠어첸트룸 오버라아(Kurzentrum Oberlaa)이다. 보헤미아 프라터에서는 전통적인 마을축제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쿠어첸트룸은 대형 온천이다. 여러 실내체육시설이 있다.
슈핀네린 암 크로이츠 (그림)
화보리텐은 비엔나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구역이다. 화보리텐의 남쪽에는 여러 유원지가 있다. 그중에서 유황 온천인 Kurzentrum Oberlaa(오버라아 치료센터)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비너베르크(Wienerberg)의 유원지도 유명하다. 라에르 베르크(Laaer Berg) 북쪽으로는 1882년에 오픈한 보헤미아 프라터(Boehmischer Prater)라는 작은 테마 파크가 있다. 화보리텐 구민회관은 EKH라고 부른다. Ernst Kirchweger Haus(에른스트 키르흐베거 하우스)의 약자이다. 화보리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14세기에 건설되었다고 하는 고틱 석탑으로 Spinnerin am Kreuz(십자가 앞의 물레아가씨)라는 명칭을 지니고 있다. 비엔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석탑이다. 일설에는 십자군 원정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수조탑(Wasserturm)도 볼만하다.
화보리타 궁전(슐로스 화보리타). 그림. 오늘날의 테레지아눔의 오리지널.
오늘날의 화보리텐구에 있는 테레지아눔의 전신은 라 화보리타(La Favorita)라고 하는 궁전이었다. 라 화보리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며 오스트리아의 군주인 칼(샤를르) 6세가 1700년대 초반에 지은 것이다. 1685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칼 6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겸 오스트리아 대공으로서 1703년에는 스페인 국왕에도 올랐다. 1700년에 스페인 국왕이던 카를로스 2세가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은 실질적으로 같은 집안으로서 문화 예술과 정치를 공유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궁정에 관한 법도도 스페인의 것을 많이 참작하였다. 1711년에 스페인에서 비엔나에 돌아온 칼 6세는 황제와 군주로서의 위엄을 더욱 높이 보이고 싶었다. 호프부르크에 연결되어 있는 스페인승마학교를 세운 것도 그때였다. 샤를르 6세는 비엔나 교외에 스페인식으로 라 화보리타라는 궁전을 짓고 시간이 있으면 이곳에서 대연회와 극장공연을 하며 즐겼다. 라 화보리타는 샤를르 6세가 가장 좋아하는 궁전이었다. 샤를르 6세가 1740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라 화보리타 궁전을 군사 용도로 사용하도록 했고 이름도 노이에 화보리타로 그쳤다. 나중에는 테레지아눔으로 변경되었고 현재는 테레지안 아카데미가 들어서 있다.
테레지아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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