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슈타트팔레

팔레 팔라비치니 (Palais Pallavicini)

정준극 2008. 4. 21. 10:29
 팔레 팔라비치니 (Palais Pallavicini)

 

팔레 팔라비치니. 1구 요셉플라츠 5번지.

 

요제프스플라츠 앞에 있는 팔레 팔라비치니는 귀족인 팔라비치니 가문이 소유했던 시내궁전이다. 팔라비치니 가문이 소유하기 전에는 프리스(Fries) 가문이 소유했었다. 그래서 팔레 프리스(Palais Fries)라고도 불렸다. 팔레 팔라비치니는 1784년 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실내는 화려한 금박과 스투코(Stucco: 벽토 장식). 수정거울,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다. 팔레 팔라비치니에서는 외교 사절단의 리셉션이 자주 열리며 간혹 콘서트도 열린다. 주소는 요제프스플라츠 5번지. 현관의 여신상이 인상적인 팔레이다.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는 홀. 간혹 이처럼 연회장으로도 사용된다.

 

팔레 팔라비치니의 자리에는 원래 잘름(Salm)백작 소유의 저택이 있었다. 잘름 백작은 16세기에 터키의 공성에서 전공을 세운 니클라스 잘름(Niklas Salm)을 말한다. 잘름 백작의 동생인 헥트로(Hektor)가 이 저택을 페르디난트 1세 황제에게 매각하였다. 페르디난트 1세는 이를 동생인 카를(Carl)에게 주었다. 페르디난트 1세의 여동생으로 프랑스 왕 샤를르 9세와 결혼하였다가 미망인이 된 엘리자베트가 비엔나로 돌아오자 엘리자베트가 이 저택에서 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트는 1592녀 이 저택을 수녀원으로 개조하였다. 이를 ‘왕비의 수녀원’이라고 불렀다. 엘리자베트는 첫 수녀원장으로 활동했다. 세월이 흘러 1782년, 요셉2세는 수녀원을 둘로 나누었다. 한 파트는 은행가이며 나중에 제국의 백작이 된 요한 폰 프리스(Johann von Fries)의 소유가 되었다. 그후 프리스 백작은 가족들의 주택으로 이 건물을 대폭 개수하였다. 개수작업은 유명한 건축가 요한 페르디난트 루싱(Johann Ferdinand Rushing)이 맡았다. 그는 이 저택의 뒤편 브로이너슈트라쎄(Brauenerstrasse)에 따로 건물을 지어 연결하였다. 이 건물은 비엔나에서 가장 순수하게 고전적 현관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특히 현관에는 4명의 여인(Karyatiden)이 건물을 받들고 있는 조각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프란츠 안톤 차우너(Franz Anton Zauner)의 작품이다.

 

팔레 팔레비치니 입구의 아름다운 여인상들. 건축에 응용되는 이런 조각을 그리스어로 카리아티다라고 부른다.

 

요한 폰 프리스의 두 아들, 즉 요셉과 모리츠는 예술애호가였다. 이들은 팔레 프리스에 전시장을 만들고 그 동안 수집해온 3백여점의 귀중한 그림과 10만점에 이르는 청동제품을 전시했다. 이곳에는 또한 1만6천여권의 장서가 있는 도서관을 만들었으며 수많은 조각 작품들도 수집해 놓았다. 접견실에서 열리는 콘서트와 시낭송회는 비엔나에서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1842년 이 저택은 알폰스 마르케세 팔라비치니(Alphons Marchese Pallavicini)의 소유가 되었다. 아직도 팔레 팔라비치니에는 팔라비치니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저택의 상당부분은 사무실과 행사장으로 임대하였다. 오늘날 팔레 팔라비치니에는 오스트리아 육상연맹과 엘마이어(Elmayer) 무도(舞蹈)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해리 라임(Harry Lime)이 살고 있는 집이 바로 팔레 팔라비치니였다.  

 

팔레 팔라비치니 가문의 문장. 팔레의 지붕 위에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