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비엔나의 교회들

4구 파울라너키르헤(Paulanerkirche)

정준극 2008. 5. 19. 22:12

파울라너키르헤(Paulanerkirche) - 파울라너교회

 

파울라너가쎄 6번지의 파울라너키르헤

 

4구 파울라너가쎄(Paulanergasse) 6번지이다. U1 타우브슈탐멘가쎄(Taubstammengasse)에서 내리거나 U1, U2, U4의 칼스플라츠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찾을수 있다. 전차는 62번, 65번 파울라너가쎄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실제로는 비드너하우프트슈트라쎄(Wiednerhauptstrasse)와 화보리텐슈트라쎄(Favoritenstrasse)가 만나는 곳에 있다. 종일 개방하고 있다. 미리 예약하면 교회안내를 받을수 있다. 주일과 축일에는 8.00, 9.30, 18.30에 미사(예배)를 드리며 토요일과 축일 전일에는 18.30에 미사(예배)를 드린다. 다만, 7-8월에는 8.00와 10.00의 두 번에 걸친 미사(예배)만 드린다. 주중에는 월-수에는 8.00에 한번, 목-금에는 18.30에 한번 미사(예배)를 드린다.

 

파울라너키르헤 회랑과 중앙제단

 

비엔나의 외곽인 뷔덴(Wieden)에는 일찍이 1211년 성안톤(Hl. Anton)에게 봉헌된 교회가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영광왕 레오폴드(Leopold der Glorreiche)가 이 교회를 성령교단에 넘겨주었다. 1529년 터키의 제1차 비엔나 공성때에 이 교회는 크게 파손되었다. 이에 따라 성려교단도 거의 해산되었다. 1627년 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2세 황제가 새로운 교회를 건축키로 했다. 페르디난트2세 황제는 이탈리아 파올라(Paola)의 성프란치스코(Hl. Franz) 수도회에 새로 건축되는 교회를 맡기고 파울라 신부를 교회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교회건축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스페인령 네덜랜드의 드 렌츠(de Renz)가 기왕이면 암브로시우스(Ambrosius) 수도단이 이 교회를 운영하기를 희망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에 부속하여 수도원을 건축키로 했다. 신성로마제국의 다음 황제 계승자인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정초석을 놓았다. 교회는 1651년 완성되었다.

 

옛날의 파울러나키르헤

 

1683년 비엔나가 또 다시 터키의 공격을 받게 되자 파울라너키르헤와 수도원은 터키의 포격을 받아 크게 파손되었다. 터키군이 물러가자 부서진 교회를 재건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누가 어떤 재원으로 재건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855년 바로크 양식의 파울라너키르헤는 2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성 아우구스트 란너(Hl. August Lanner)의 유해를 안치하면서 그에게 봉헌하게 되었다. 교회의 정면은 단순하지만 내부는 바로크의 정수를 보는 듯 바실리카 스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는 상당히 넓은 편이어서 회랑을 중심으로 작은 채플들이 들어서 있다. 특히 가운데를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우람하여 보기에 장엄하다. 커브로 되어 있는 천정에서 들어오는 광선은 교회 내부를 안락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중앙제단의 성화는 인상적이다. 환한 빛의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림이다. 중앙제단에는 여러 성자들과 대주교의 기념상이 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1718년 완성된 것들이다. 중앙제단의 가운데에는 십자가상의 예수에 대한 성화가 자리 잡고 있다. 사이드 채플에 있는 성화중 두 개가 특히 눈길을 끈다. 하나는 예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 앞에 천사가 나타나 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을 수호해주는 것이다. 모드 파울 트로거(Paul Troger)의 작품으로 1745년 봉헌한 것들이다.

 

뷔드너하우프트 슈트라쎄에서 보이는 파울라너키르헤. 오른쪽의 건물은 호텔 슈타트 트리에스테로서 1970년대 후반에 IAEA 총회에 참석하는 우리나라 대표단원들이 자주 묵었던 호텔이다.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 북단에 있는 트리에스테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