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비엔나의 교회들

9구 키르헤 마리아 드 메르세드(Kirche Maria de Mercede)

정준극 2008. 5. 30. 05:47

9구 키르헤 마리아 드 메르세드(Kirche Maria de Mercede)

비엔나 가톨릭청년연맹 발상지

 

키르헤 마리아 드 메르세드


볼츠만가쎄(Boltzmanngasse) 9번지에 있다. 마리아 드 메르세드교회는 1723년 병원교회로서 시작하였다. 종전 스페인이 세운 병원을 교회역할도 할수 있게 개조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인 1785년부터는 비엔나에 있는 어떤 고아원이 이 건물로 들어오게 되었다. 또 그로부터 약 130년 후인 1916년에는 대주교 관할의 신학원이 이곳으로 옮겨 왔다. 신학원은 젊은 사제들을 위한 기숙학교였다. 1차 대전의 와중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키르헤 마리아 드 메르세데의 연혁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일은 1820년경 구세주회(救世主會: Redemptorist) 지도자이며 청년들을 위한 사제(Jugendseelssorger)인 프란츠 텐들러(Franz Tendler)가 이 교회에서 비엔나 최초로 가톨릭청년연맹을 창시한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의 YMCA와 같은 단체였다. 프란츠 텐들러는 비엔나가톨릭청년사제회를 ‘젊은 사도들의 모임’이라고 불렀다. 이 모임은 특히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구제하는 활동을 벌여 칭송을 받았다. 비엔나가톨릭청년연맹의 운동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청년들이 비엔나를 찾아 왔다. 비엔나는 이들에게 명예시민증을 주었다. 이들은 Croix de Merite라는 메달을 달고 다녔다. 프란츠 텐들러는 1920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마리아 드 메르세드교회에 안치되어 있다.


교회는 양대 세계대전을 거쳤지만 크게 손상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대적인 보수는 필요했다. 1969년부터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회중석을 넓힌 것과 제단을 다시 만든 것이다. 1970년 어떤 후원자가 오르간을 기증하였다. 그러나 이 오르간은 교회의 전체 바로크풍 장식과 맞지 않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마리아 드 메르세드교회의 내부는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으로 넘쳐 있다. 교회의 단순한 외관만 보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내부가 들어 앉아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자비의 성모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