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비엔나의 교회들

13구 키르헤 마리아 히칭(Kirche Maria Hietzing)

정준극 2008. 5. 31. 05:35
 

13구 키르헤 마리아 히칭(Kirche Maria Hietzing) - 히칭성모교회

마리아탄생기념교회(Maria Geburt)

 

        


히칭성모교회는 암 플라츠(Am Platz) 1번지에 있다. 건물 중안의 높은 종탑이 매우 인상적인 아름다운 교회이다. 현재의 교회 터에는 이미 13세기에 독일기사단교단에 속한 성모예배당(Muttergottetskapelle)이 있었다. 1414-19년 고틱 양식의 새로운 예배당이 들어섰다. 성모에게 봉헌된 교회였다. 새로운 교회는 그후 두 번에 걸친 터키의 비엔나 공성등으로 피폐해졌다. 더구나 헝가리가 공격하여 파괴한 일도 있었다. 1685년 또 다시 새로운 고틱 양식의 교회를 건설했다. 아름다운 외관은 거장 도미니쿠스 피아쫄(Dominicus Piazzol)의 작품이며 내부는 안토니 갈리아르디(Antoni Galliardi)의 솜씨이다. 교회내부의 성화들은 모두 성모마리아의 일생을 다룬 것으로 탄생에서부터 세상 떠날 때까지를 그린 것이다. 중앙제단의 은혜로운 조각상은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 조각상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1529년 터키의 제1차 비엔나 공성 때에 불행하게도 히칭성모교회는 화염에 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성모 조각상은 불길이 치솟기 전에 누가 재빨리 꺼내어 급한 대로 근처의 나무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마을을 장악한 터키군은 주민들을 모아 놓고 학살을 자행했으며 나머지 주민들은 노예로 삼고자 했다. 히칭 주민 4명이 터키군에게 불복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하기 전에 쇠사슬에 매여 바로 성모상이 얹어 있는 나무에 묶이게 되었다. 그러나 터키의 폭도들은 이 4명을 잊고 퇴각하였다. 마을에는 사람을 구경할수 없을 정도로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네명은 목청이 터지도록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나무 위에 있던 마리아상이 갑자기 환한 빛으로 빛났다. 그 빛이 쇠사슬에 닿자 쇠사슬은 소리도 없이 끊어졌다. 이와 함께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대들을 보호하리’(Huetts'eng)라는 말씀이었다. 4명의 포로들은 무사히 자유를 얻게 되었다. 히칭(Hietzing)이라는 명칭은 바로 휘츠엥(Huetts'eng)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그림이 종앙제단에 장식되어 있다. 제단에 있는 마리아 목상의 머리 위에는 푸른 나무 잎이 올려져 있다. 이는 마리아 목상이 교회 밖의 나무 위에 올려져 있었던 것을 뜻한다. 중앙제단 양 옆의 황금색 네 개 기념상은 마리아의 부모인 성요아침과 안나, 세례요한의 부모인 성엘리자베스와 스가랴이다. 부제단에 있는 성화중 하나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이며 다른 하나는 임종하는 성요셉이다.

 


마리아 목상에 대한 얘기가 퍼지자 순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교회는 이들을 위해 채플을 하나 더 만들었다. 성요한 네포무크를 수호성인으로 받드는 채플(예배처)이다. 이 제단에는 성요한 네포무크가 순례하는 모습의 유화가 걸려 있다.


히칭성모교회는 마리아 테레자 여제가 가장 자주 찾아온 교회였다. 마리아 테레자는 자기가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콰이어 뒤편에 앉아 있다가 슬며시 돌아 갔다고 한다. 1762년 마리아 테레자는 온갖 꽃을 수놓은 아름다운 은제 만토를 마리아 목상을 위해 기증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1809년 어쩐 일인지 만토를 녹여 다른 용도로 썼다는 것이다. 1945년 전쟁의 막바지에 히칭성모교회은 두발의 포탄을 맞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94-95년에 복구가 이루어졌으며 최종 내부 보수는 2003-05년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내부와 외부가 마치 새교회처럼 모두 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