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명소와 공원

아슈팡반호프(Aspangbahnhof)

정준극 2008. 6. 14. 06:58
 

아슈팡반호프(Aspangbahnhof) - 아슈팡역


3구 란트슈트라쎄에서 생맑스 공동묘지 아래쪽 짐머링거 하우프트슈트라쎄에 인접하여 짐머링 아슈팡반호프가 있다. 지금은 기차역으로 사용하지 않고 거의 폐허가 되어 있지만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기념비에 적혀 있다. 아슈팡반호프는 아픈 과거를 품고 있는 장소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학대가 있었던 곳이다. 2차 대전중 비엔나에 살던 수많은 유태인들을 기차에 태워 아우슈비츠와 같은 동부의 강제수용소로 보내던 곳이다. 그러므로 아슈팡반호프라는 이름은 죽음과 직결된 명칭이었다. 유태인들을 태워 보낸 기차는 1941년부터 움직였다. 1942년 5월에는 5천명이 기차에 실려 동부로 떠났다. 그해 가을에는 무려 2만명이 죽음의 기차를 탔다. 나치는 2구 레오폴드슈타트의 유태인 게토를 소탕하듯 철거하고 이곳에서 살던 유태인들을 무작정 트럭에 태워 아슈팡반호프로 데려와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나치는 유태인 소개(疏開)라는 미명아래 레오폴드슈타트를 유령의 마을로 만들었다. 유태인들은 가축을 운반하던 화물차에 실려 머나먼 동부로 이송되었다. 오랜 기차 운송 중에 말할수 없이 비위생적인 화물칸 안에서 이미 목숨을 잃는 유태인들도 부지기수였다.

 

 

 광장의 이름이 '추방으로 인한 희생'이다.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던 유태인들을 추모하는 비문


기차가 출발하던 지점인 아슈팡슈트라쎄(Aspangstrasse)의 한 구석에는 작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돌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1939-1942년에 옛 아슈팡반호프에서 수많은 오스트리아의 유태인들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결코 잊을수 없다.” (In den Jahren 1939-1942 wurden vom ehemaligen Aspangbahnhof zehntausende österreichische Juden in Vernichtungslager transportiert und kehrten nicht zurück. Niemals vergessen.)


오늘날 이곳은 급행열차(S-Bahn)가 지나갈뿐 기차역으로서의 역할은 없다. 사람들은 옛 기차역이 있던 들판에서 조깅을 하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지만 누구도 이곳이 그런 뼈아픈 역사가 깃들여 있던 곳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지는 않다. 비엔나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비엔나 유태인들의 아픈 역사를 되새겨보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한번쯤 살펴보고 기념비 앞에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을 것을 권고한다. 

 

나치시대의 아슈팡반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