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슈트라우스가 찬미한 비오리카 우르술레아츠(Viorica Ursuleac)

정준극 2008. 6. 28. 08:46
 

비오리카 우르술레아츠


비오리카 우르술레아츠(Viorica Ursuleac)는 루마니아의 오페라 소프라노이다. 그는 1894년 당시 루마니아의 체르니브치(Chernivtsi)에서 그리스정교회 사제의 딸로 태어났다. 체르니브치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영토이다. 비엔나에서 성악공부를 마친 우르술레아츠는 1922년 자그레프(Zagreb)에서 샬로테(마스네의 베르테르)로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다. 이후 그는 비엔나 폭스오퍼(1924-26), 프랑크푸르트 오페라(1926-30), 비엔나 슈타츠오퍼(1930-35), 베를린 슈타츠오퍼(1935-37), 뮌헨오페라(1937-44)에서 여러 오페라의 주역을 맡으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우르술레아츠는 푸랑크푸르트에 있을 때에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쓰를 만나 결혼하였다.

 

 

우르술레아츠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가장 총애하는 소프라노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우르술레아츠를 ‘모든 성실한 사람 중에서 가장 성실한 사람’(die treueste aller Treuen)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뢰하였다. 우르술레아츠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4편의 세계초연에서 주역을 맡았다. 아라벨라(1933), 프리덴스타크(1938), 카프리치오(1942), ‘다나에의 사랑’(1944)이다. 오페라 프리덴스타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클레멘스크라우쓰와 비오리카 우르술레아츠 부부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카프리치오의 대본은 우르술레아츠의 남편인 크라우쓰가 작성한 것이다. 우르술레아츠가 가장 좋아한 역할은 아라벨라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프리덴스타크' 초연에서 상대역인 한스 호터(Hans Hotter)와 함께.

가운데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우르술레아츠는 1930-34년, 1942-43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고정 출연하였으며 1934년의 런던 코벤트 가든 시즌에서는 야로미르 봐인버거(Jaromir Weinberger)의 오페라 ‘백파이프 부는 슈봔다’(Schwanda the Bagpiper)의 영국 초연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아 갈채를 받았다. 우르술레아츠는 코벤트 가든의 아라벨라에도 주역으로 출연했다. 우르술레아츠는 스칼라의 무대를 장식하였다.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부인’(왕비 역), 엘렉트라(크리소테미스 역),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 바그너의 발퀴레(지글린데 역)에 출연하여 박수를 받았다. 당시 유럽 오페라 성악가들의 남미 순회공연은 하나의 유행이었지만 우르술레아츠는 단 한차례의 남미 공연만을 가졌다. 194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출연한 것이었다. 소프라노 키르스텐 플라그슈타드(Kirsten Flagstad)의 상대역인 브란게네로 출연하였다.


우르술레아츠의 레퍼토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뿐만 아니라 바그너, 베르디, 푸치니, 베토벤,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었다. 대표적인 역할은 백작부인(피가로의 결혼), 돈나 엘비라(돈 조반니), 레오노레(휘델리오), 젠타(방랑하는 화란인), 아멜리아(시몬 보카네그라),아멜리아(가면무도회), 레오노라(운명의 힘),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돈 카를로), 토스카(토스카), 미니(황금서부의 아가씨), 투란도트(투란도트), 조피(장미의 기사), 아리아드네(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헬렌(이집트의 헬렌) 등이다. 이같은 공적으로 우르술레아츠는 1934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임명하는 캄머쟁거린(Kammersaengerin)이 되었으며 1935년에는 프러시아의 캄머쟁거린이 되었다. 우르술레아츠의 고별 공연은 1953년 뷔스바덴(Wiesbaden)에서 ‘장미의 기사’였다. 그후 1964년부터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의 교수로서 활동했다.


우르술레아츠의 음성은 위대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음악적 재능과 배우로서의 연기력은 누구도 따를수 없는 것이었다. 우르술레아츠는 어떤 공연이든지 시작하기 전에 두시간 이상을 성악연습을 했다. 그만큼 모든 공연에 최선을 다했다. 우르술레아츠는 1954년 남편 크라우쓰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묘지가 있는 스위스 티롤지방의 에르발트(Ehrwald)에서 살았다. 우르술레아츠는 향년 91세로 1985년 10월 22일 에르발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남편 크라우쓰의 묘지 옆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