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당은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범하는 전쟁을 일으켰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 이후 반격에 나선 한국군과 연합군은 10월 1일, 바야흐로 통일의 념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였다. 이날을 기념하여 1956년부터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고 국가적인 기념행사를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국군의 날은 국가 공휴일이었다. 10월은 1일이 국군의 날, 3일이 개천절, 9일이 한글날, 그리고 24일이 유엔데이로서 모두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황금의 달이었다. 10월 1일, 국군의 날에는 광화문 네거리, 소방서 앞길에는 커다란 스탠드가 세워져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삼부 요인, 그리고 주한 외교사절단 대표들이 스탠드에 앉아 우리 국군의 보무도 당당한 시가행진을 보고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구경하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서서 광화문 근처까지는 가지 못하고 덕수궁 담벽이 있는 곳에서 운집한 사람들을 비집고 나라를 지키고 공산군을 무찌른 국군들의 시가행진을 감개무량하게 지켜보았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하는 탱크부대. 6.25때 이만한 탱크만 있어도 그놈의 빨갱이들을 물리칠수 있었을 텐데...
국군의 날 기념행사 중 하일라이트는 한강 인도교 부근의 모래사장에서 펼쳐지는 대한민국 공군의 공중폭격 시범이었다. 국부 이승만 대통령께서 참석하신 공군 시범에서는 전투기들이 한강 가운데에 설치해 놓은 가상의 적진을 정확하게 폭격하였고 이어 한강 백사장에 설치해 놓은 가상적군의 전차들을 폭격하여 섬멸하였다. 이와 함께 하늘에서는 낙하산이 펼쳐지고 오색의 연기를 내뿜는 낙하산병들이 지정해 놓은 장소에 사뿐이 내려 앉는 시범도 있었다. 이렇듯 공군 시범이 행하여 졌던 장소가 내가 만리동 이후에 살았던 동부이촌동의 강변이었다. 1950년대 말까지는 동부이촌동에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아서 공군 폭격 시범이 가능했었다. 그후 1960년대 후반에 동부이촌동에 이른바 공무원아파트가 들어섰고 공군 폭격 시범이 있었던 백사장 가까이에는 한강맨션이라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게 됨으로서 동부이촌동은 바야흐로 아파트의 군락으로 변모하였다.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에는 당연히 한강 백사장에서의 공군 폭격 시범이 안전상의 문제 등으로 사라졌다. 이제 국군의 날은 한글날과 함께 공휴일이 아니다. 공휴일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취한 조치이다. 이제 국군의 날에는 보무 당당한 우리 국군들의 시가행진은 볼수 없게 되었다. 대전의 기념식에서 분열과 사열이 있을 뿐이다. 좌파 대통령들이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여 순국장병들의 혼백을 위로하기는 커녕 햇볕운운하며 조국 통일을 말하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1976년 한강변에서의 국군의 날 기념식. 박정희 대통령의 옆에는 교복을 입은 박근혜가 영부인을 대신하여 앉아 있다. 육영수여사는 1974년 광복절기념식상에서 피살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망원경으로 공군 사격 시범을 관찰하고 있다. 단상에 놓인 국화가 눈길을 끈다. 매우 검소한 단상이다.
'발길 따라, 추억 따라 >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남회 (0) | 2008.07.11 |
---|---|
공무원아파트-왕궁아파트 (0) | 2008.07.08 |
염천교 고금 (0) | 2008.07.03 |
만리동 고개 (0) | 2008.07.03 |
홍파동시절 (0) | 2008.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