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9. 콘라드 서세이의 '위험한 관계'

정준극 2008. 9. 7. 07:01

위험한 관계(Dangerous Liaison, The ) - 위험한 밀회

Conrad Susa (콘라드 서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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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The Dangerous Liaison. 리에이잔(liaison)이라는 단어는 간통, 밀통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전체 내용상 '위험한 관계'라고 글자그대로 번역하는 것보다 '위험한 밀회' 또는 '위험한 정사(情事)'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피에르 쇼덜로 드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의 소설 Les Liaisons dangereuses를 필립 리텔(Philip Littell)이 영어대본으로 만들었다. 전2막 8장. 

초연: 1994년 9월 10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주요배역: 메르투일 후작부인(Ms), 발몽 자작(Bar), 마담 뚜르벨(S), 세실 드 볼란즈(S), 마담 드 로스몽드(S), 마담 드 볼랑즈(Ms), 슈발리에 드 당스니(T) 

사전지식: 라클로(Laclos)의 소설 Les Liaisons dangereuses는 서한체(書翰體) 소설이다. 즉, 소설 전체가 편지로 구성된 작품이다. 주인공들이 서로 보낸 편지를 통하여 독자들은 사건들이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중요한 점은 사건의 진전이 아니라 주인공인 발몽(Valmont)과 메르투일(Merteuil)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생각과 소망이다. 이런 심리적인 내용을 오페라(또는 영화)무대에서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원작 내용의 거의 모두가 행동이 아니라 감정과 선입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곡자인 서세이(Susa)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음악에 의한 심리적 묘사를 강조하였다.

에피소드: 콘라드 서세이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음악원의 명예교수로 있다. ‘위험한 연락’은 서세이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위험한 밀회’는 1988년 영화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글렌 클로우스(메르투일 후작부인역), 존 말코비치(발몽 자작역), 미셀 파이퍼(마담 트루벨역)등이 주역을 맡았다. 영화는 프랑스의 명소에서 로케이션을 했다. 파리의 일 드 프랑스(Ile-de-France)와 피카르디(Picardie)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유명한 샤토 드 뱅상느(Chateau de Vincennes)에서 촬영했다. 영화에 사용한 음악은 18세기 고전적인 이미지를 주기위해 비발디, 바흐, 헨델, 글룩의 바로크 작품을 사용하였다. 1994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초연에서는 발몽역에 토마스 햄슨(Thomas Hampson), 메르투일역에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Fredrica von Stadt), 투르벨역에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 세실역에 메리 밀스(Mary Mills)라는 호화 캐스트였다.

 

현대적 연출. 뉴욕 시티오페라


줄거리: 18세기 프랑스. 부유층들이 쾌락을 추구하던 시기이다. 메르투일 후작부인(Marquis de Merteul)은 도덕보다는 쾌락을 추구하는 당시 부유층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메르투일은 당대의 멋쟁이 발몽자작(Vicomte de Valmont)을 애인 삼아서 인생을 엔조이하고 있다. 여자들은 점잖은 신사보다는 바람둥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마담 드 볼랑즈(Madame de Volanges)는 메르투일의 사촌이다. 볼랑즈에게는 예쁜 딸이 하나 있다. 세실 드 볼랑즈(Cecil de Volanges)이다. 볼랑즈는 딸 세실을 어떤 사람과 결혼시키려고 주선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딸 세실이 음악선생인 슈발리에 당스니(Chevalier Danceny)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세실과 결혼얘기가 있었던 사람이 실은 한때 메르투일의 애인이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약간의 미련이 남아 있던 메르투일은 그를 사위로 삼으려던 사촌 볼랑즈에게 유감이 많다. 원래 속마음이 사악한 메르투일은 사촌인 마담 볼랑즈에게 복수키로 결심한다. 그 복수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자기의 현재 기둥서방격인 발몽에게 세실을 유혹토록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치사한 방법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방법도 통했던 모양이다.


몽플리에 오페라


발몽은 메르투일이 자기의 조카딸 세실을 유혹하라고 부탁하자 그건 좀 곤란하다면서 내키지 않아한다. 왜냐하면 발몽은 얼마전 숙모의 집에서 우연히 마담 드 투르벨(Madame de Tourvel)이라는 여인을 보고 그만 마음에 푹 빠져서 다른 여자는 생각치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르벨은 남편이 멀리 외국으로 출타중이어서 잠시 발몽의 숙모 집에 와서 지내고 있었다. 투르벨은 아주 숙녀처럼 보이는(적어도 그렇게 행세하는) 여자이다. 웬만한 여자는 발몽이 접근하면 은근히 마음을 주기 마련인데 투르벨은 발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발몽은 그런 투르벨에게 마음이 뺏겨 제비로서의 체면유지를 위해서라도 당장이라도 유혹해 보려는 생각이다. 그런 때에 메르투일이 세실이라는 아가씨를 유혹하라고 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보스터 오페라


세실의 어머니인 볼랑즈는 아무래도 여자의 직감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발몽이라는 이름난 난봉꾼이 자기의 귀여운 딸 세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어머니로서의 본능으로 딸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얼핏 보니 발몽이 얌전떠는 투르벨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볼랑즈는 일종의 의협심에서 투르벨에게 비밀리에 편지를 보내어 발몽이라는 아주 못된 작자가 혹시 유혹하려 들지 모르므로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식으로 발몽은 볼랑즈가 투르벨에게 주의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화가난 발몽은 메르투일의 부탁대로 세실을 유혹하여 결과적으로는 세실의 어머니인 볼랑즈에게 복수키로 작정한다. 발몽의 작전은 간단하다. 세실이 음악선생인 당스니와 좋아하는 사이라는 것을 역이용하는 작전이다. 세실의 어머니인 볼랑즈는 음악선생 당스니를 사위 감으로서 탐탁하게 여지기 않기 때문이다.


발몽은 숙모집에 놀러온 세실을 아주 간단히 유혹하였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세실로서 잘생기고 말솜씨가 좋은 귀족의 접근은 막을수 없는 것이었다. 세실은 발몽이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줄로 믿고 함께 동거한다. 이어서 세실은 발몽의 아이를 임신한다. 파리의 사교계에서 빅뉴스가 되는 큰 사건이다. 그런데 세실이 유산(流産)을 한다. 발몽으로서는 스캔들을 피하게 되었다. 일이 이쯤되자 발몽의 본색이 드러난다. 발몽은 세실에게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고 오래전부터의 타겟은 얌전한 투르벨이었다.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는 속담이 프랑스에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얌전한 투르벨은 발몽이라는 바람둥이가 자기에게 계속 치근거리며 유혹하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은 발몽의 플레이보이 낚시 줄에 걸려 그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그러한 차에 발몽에게 이상한 감정이 생겼다. 평생을 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유혹을 미덕으로 생각하던 발몽에게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 생긴 것이다. 발몽에 대한 투르벨의 헌신적인 사랑이 발몽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뿌리였다. 그러나 발몽이 메르투일 후작부인과 함께 꾸민 사악한 음모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발몽과 메르투일 후작부인


메르투일은 애인으로 데리고 놀던 발몽이 투르벨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것 같자 가만히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메르투일은 발몽에게 투르벨과의 관계를 끊는다면 자기와 멋진 하루 밤을 지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메르투일은 만일 발몽이 그렇게 못하겠다면 파리의 사교계에서 대대적인 망신을 주겠다고 겁을 준다. 사교계에서 여자관계 때문에 큰 망신을 당하면 발몽과 같은 신분에서는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치명적이 아닐수 없다. 발몽은 메르투일의 수단에 꼼짝 못하고 투르벨을 떠난다. 그런데 투르벨은 중병에 걸려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처지가 된다. 이쯤되면 아마 ‘라 트라비아타’를 연상하는 독자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이제 발몽은 메르투일에 대하여 증오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더구나 메르투일은 발몽을 걷어차고 대신 세실을 사랑하고 있는 당스니(음악선생)을 유혹하여 엔조이하고 있다. 발몽은 메르투일을 찾아가 투르벨과 헤어졌으니 약속대로 하루 밤을 함께 지내자고 주장한다. 메르투일은 발몽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는다. 두 사람은 크게 언쟁을 벌인다. 메르투일는 음악선생 당스니에게 실은 저 못된 발몽이 세실을 유혹하여 임신까지 시키고 이제는 다른 유부녀를 유혹하여 그 부인을 죽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 소리를 들은 당스니는 그래도 세실을 사랑했던 남자여서 그런지 하여튼 발몽에게 결투를 요청한다.


발몽과 당스니는 칼을 빼어들고 결투를 시작한다. 그런데 발몽은 이제 더 이상 연애니 무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지나간 일들이 모두 후회되기만 하다. 발몽은 죽음으로 세상을 하직코자 한다. 그래서 상대방인 당스니에게 어서 주저하지 말고 자기를 칼로 찌르라고 부탁한다. 발몽은 죽기 전에 당스니에게 제발 투르벨 부인을 찾아가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투르벨 뿐이었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세실과 투르벨을 유혹한 것은 모두 메르투일의 치졸한 음모 때문이라고 밝히고 증거로서 가지고 있던 메르투일의 편지들을 당스니에게 건네준다. 당스니로부터 발몽의 마지막 말을 전해들은 투르벨은 평안하게 숨을 거둔다. 당스니는 메르투일의 편지들을 엮어서 책으로 발간한다. 오페라를 보고 있던 관중들은 무대에 홀로 남아 있는 메르투일에게 야유와 욕설을 보낸다.


'위험한 관계' 영화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