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36. 프로코피에프의 '갬블러'

정준극 2008. 9. 9. 05:41

The Gambler(갬블러)

Sergei Prokofiev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갬블러의 한 장면


타이틀: The Gambler (Igrok). 전4막. 도스토예브스키(F. Dostoyevsky)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작곡자 자신이 대본을 썼다. Gambler를 우리 말로 '도박사'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노름꾼'이라고 하기도 뭐해서 '갬블러'라고 그대로 타이틀을 붙여 보았다. 원작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이그로크(Igrok)이다. 네덜란드에서는 De Speler 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바람둥이'라는 뜻이 강한 단어이다.

초연: 1929년 브뤼셀의 테아트르 로얄 드 라 모네(Theatre de la Monnaie). 볼쇼이 오페라는 1975년에 메트로폴리탄에서 ‘갬블러’를 공연했다. 메트로가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무대에 올린 것은 2001년이었다.

주요배역: 알렉세이(장군가족의 가정교사: T), 폴리나(장군의 피후견인: S), 장군(B), 블랑세(고급 창녀: Ms), 후작(T), 미스터 애스틀리(영국인: Bar), 바부슈케(폴리나의 할머니: Ms)

사전지식: 프로코피에프는 1914년에 도스토예브스키의 ‘갬블러’를 오페라로 만들기고 작정했다. 마리인스키 극장의 지휘자인 알베르트 코아테스(Albert Coates)가 완성되는 대로 마리인스키의 무대에 올리겠다고 하며 적극 권장했다. 프로코피에프는 1917년 1월에 오케스트레이션까지 완성했다. 이제 리허설만 하면 되었다. 그러는데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났다. 그 이후 러시아에서의 초연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갬블러'의 무대

 

줄거리: 무대는 유럽의 룰레텐버그(Roulettenberg)라는 가상의 온천장이다. 시기는 1860년대이다. 제1막. 장군 가족은 온천장에서 휴양중이다. 장군 집의 가정교사인 알렉세이(Alexei)와 장군의 피후견인인 폴리나(Polina)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폴리나의 부모는 안계시고 할머니가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 폴리나는 할머니(Babushke)가 돌아가시면 유산을 받게 되어있다. 할머니 바부슈케가 세상을 떠나면 그동안 폴리나를 데리고 살았던 장군도 상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할머니가 어서 돌아가시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 알렉세이는 사람은 성실한 것 같은데 도박을 좋아해서 문제이다. 가정교사의 급여라고 해야 얼마 되지 않으므로 그 돈으로 도박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애인인 폴리나에게 돈을 빌려 도박을 하지만 그마저도 잃었다. 폴리나는 알렉세이에게 돈을 빌려주느라고 온천장에 와서 있는 후작(Marquis)에게서 몰래 돈을 빌렸다. 후작은 약간 음흉한 인물이어서 젊고 예쁜 폴리나에게도 은근히 마음을 두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장군은 온천장을 돌아다니며 돈 많은 남자들을 후리는 일종의 고급 창녀인 블랑세(Blanche)에게 마음이 뺏겨 약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닐스키(Nilsky)라고 하는 한량급 귀족이 나타나 블랑세에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장군으로서는 불안한 입장이다. 그러므로 장군의 관심사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폴리나의 할머니가 빨리 죽어서 폴리나를 보살펴 준 보상금을 받는 일, 또 하나는 블랑세가 자기를 좋아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프다던 폴리나의 할머니가 전보를 보내 온천장에 온다는 것이다. 모두들 ‘아니, 저 할머니는 어서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고 뭐 하시는 거지?’라고 자문한다. 드디어 할머니(바부슈케)가 도착하였다.

 

알렉세이
  

2막에서는 독일에서 온 남작과 남작부인이 등장한다. 남작은 나이가 좀 들었지만 남작부인은 반반하게 생겼다. 이들은 독일 귀족이 무슨 임금님이나 되는 것처럼 점잖은 있는 대로 빼면서 산책을 한다. 폴리나는 알렉세이의 사랑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남작부인을 만나보도록 한다. 폴리나는 알렉세이가 남작부인을 만나서 아무렇지도 않으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수작을 부리거나 주책을 부리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세이가 남작부인에게 다가가서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하자 근엄한 남작이 목소리를 높여 ‘당신 누구야?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말도 붙이지 못하고 돌아온다. 알렉세이가 남작부인에게 수작을 걸려다가 호통 한방에 물러나자 장군을 알렉세이를 불러 놓고 ‘이놈아, 너 때문에 점잖은 나까지 망신당하고 있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고 야단을 친다.

 

우주정거장과 같은 무대

  

알렉세이가 뉘우칠 기색을 보이지 않자 장군은 그를 가정교사에서 당장 해고한다. 알렉세이는 장군이 블랑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난리를 치면서도 아무 잘못도 없는 자기만 야단친다고 하며 불만을 털어 놓는다. 한편, 블랑세는 온천장까지 원정을 왔는데 정작 손에 돈은 들어오지 않으니까 답답해한다. 블랑세는 독일에서 온 남작이 사람이 의리가 있는것 같아서 돈 좀 빌려달라고 말한다. 남작은 신사체면에 예쁜 아가씨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데 있으면서도 빌려주지 않을수 없어서 지갑을 꺼내려는 순간, 반반해서 점잖을 것 같은 남작부인 갑자기 일어서서 남작을 개몰듯 끌고 다른 곳으로 가는 바람에 블랑세의 목적을 달성되지 않는다. 블랑세는 장군이 돈좀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장군은 바부슈카 할머니가 돈 좀 주기를 바라고 있다. 사람들은 바부슈카 할머니가 오늘 밤이라도 죽어서 유산을 나누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논을 하고 있는데 바부슈카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니다. 

 

파울리나와 알렉세이

 

제3막. 바부슈케는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고 자랑하면서 기왕 온천장에 왔으니 건강도 증진하고 도박을 하여 돈도 벌겠다고 다짐한다. 바부슈카는 생각 밖으로 돈을 빨리 잃었다. 걱정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손녀딸인 폴리나가 걱정한다. ‘우리 할머니 돈 다 잃으면 어떻게 해? 나는 뭐야?’이다. 장군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러다가 거덜나면 난 뭐야? 땡전 한푼도 못 받는거 아냐?’라면서 걱정이다. 더구나 장군은 바부슈케가 돈을 잃으면 잃을수록 예쁘고 매력이 넘치는 블랑세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안절부절이다. 바부슈카로부터 폴리나에 대한 사례비를 받으면 그 돈으로 블랑세를 확 꼬셔볼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장군은 참다 못하여 경찰을 불러 ‘저 할망구가 노망이 들었으니 잃은 돈은 다시 돌려주고 어쩌구’라고 할 판이었지만 도박장 주인이 눈을 부라리고 있어서 그마저도 하지 못한다.

 

바부슈케의 도착

   

후작 나리도 걱정이다. 폴리나에게 돈을 빌려 주었는데 언제 갚을지 함흥차사이기 때문이다. 폴리나에게 독촉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귀족 체면에 빚 갚으라고 아가씨 뒤만 쫓아 다닐수도 없으므로 속만 상하고 있다. 그나저나 다행히 바부슈카 할머니가 도박장에서 돈을 따서 손녀딸인 폴리나에게 얼마라도 주면 빚진 돈을 갚을수 있을 텐데 바부슈카 할머니는 무슨 깊은 뜻이 있는지 계속 돈을 잃고 있다. 사람들이 말리지만 소용없다. 결국 바부슈카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달달 털어서 잃었다. 돈 잃은 사람은 본전이라도 찾겠다는 심정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 다시 출전하는 것이 일반이다. 바부슈카 할머니도 주머니에 있던 돈까지 몽땅 잃자 돈푼이나 있을 것 같은 후작에게 돈 좀 빌려달라고 말했으나 후작으로서는 빌려줄 돈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손녀딸과 할머니에게 모두 돈을 빌려 줄 생각이 없어서 핑계를 대고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바부슈카 할머니는 어쩔수 없이 ‘에이, 오늘 재수 드럽게 없네!’라고 소리치고는 마침 옆에 있던 영국사람 미스터 아스틀리(Mr Astley)에게 기차 값을 꾸어서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폴리나와 장군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갬블러의 한 장면


제4막. 폴리나에게 돈을 빌려준 후작은 아무리 힌트를 주고 눈치를 주어도 돈을 갚지 않자 편지를 보낸다. 마침 알렉세이가 폴리나를 만나러 왔다가 폴리나가 손에 들고 있는 편지를 본다. 알렉세이가 대충 편지를 읽어보니 후작이 장군에게서 돈을 빌렸는데 갚지 못하고 있느니 폴리나가 후작에게 갚을 돈으로 대신 갚아 달라는 내용이다. 알렉세이는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을 비로소 알고 속으로 만세를 부른다. 장군에게는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이다. 잠시후 기분이 좋아진 알렉세이는 돈 몇푼을 마련하여 도박장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알렉세이가 돈을 거는 대로 따는 것이 아닌가! 벌써 20판이나 내리 이겼다. 알렉세이는 딴 돈을 주머니에도 넣고 양말 사이에도 넣었지만 이젠 더 이상 넣을 곳도 없어 걱정이다. 돈을 잔뜩 딴 알렉세이는 폴리나를 만나러 호텔 방으로 간다. 알렉세이는 폴리나에게 돈을 주며 후작인지 무언지에게 빌린 돈을 어서 갚으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폴리나는 돈 받기를 거절하면서 알렉세이에게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여자 중에는 돈보다도 사랑을 먼저 따지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알렉세이는 돈도 많이 생겼으니까 이참에 폴리나와 함께 저 멀리 사라져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것에 웬 일인가? 폴리나가 종전의 모습대로 탁 쉰 목소리로 ‘어서 그 돈 다 내놓지 못해?’라고 대갈일성한다. 그러면서 자기의 사랑은 때와 장소에 따라 편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알렉세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돈을 다 내놓는다. 그러나 이건 또 어쩐 일인지? 폴리나는 돈을 집어서 알렉세이의 얼굴에 던지고 밖으로 나간다. 오페라는 알렉세이가 방에 홀로 있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다만, 알렉세이는 조금 전까지 자기의 도박 운이 너무 좋았던 사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폴리나고 무어고 그 생각뿐이다.

 

파울리나(폴리나)와 알렉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