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79. 루이지 달라피콜로의 '죄수'

정준극 2008. 9. 21. 18:56

죄수(Il prigioniero) - The Prisoner

루이지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의 단막 오페라

12음기법을 사용한 현대 작품

 

루이지 달라피콜라

 

'죄수'(Il prigioniero)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루이지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 1904-1975)의 서막을 포함한 단막 오페라로서 대본도 작곡자 자신이 완성한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1949년 12월 1일 이탈리아의 라디오방송국인 RAI(Radio Audizioni Italiane: 현재의 Radiotelevisione italiana)에서 방송을 위해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오페라 '죄수'는 프랑스의 작가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리슬 아당(Auguste Villiers de l'Isle-Adam)의 '신잔혹이야기'(Nouveaux contes cruels)라는 문집에 포함되어 있는 La torture par l'esperance(희망에 의한 고문)이라는 스토리, 그리고 샤를르 드 코스터(Charles de Coster)라는 작가가 쓴 La Legende d'Ulenspiegel et de Lamme Goedzak(울렌슈피겔과 람 괴드작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오페라의 일부 음악은 달라피콜라가 '죄수'와 비슷한 테마로 이미 작곡했던 Canti di prigionia(어느 죄수의 노래: 1938)의 합창곡을 사용한 것이다. 달라피콜라는 이 오페라를 1944-48년의 4년에 걸쳐 완성했다. 단막의 이 오페라는 일곱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연시간은 약 50분이다.

 

감방에 홀로 갇혀 있는 죄수

                 

오페라 '죄수'가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두가지 사항에서이다. 첫째는 이 오페라가 비록 중세 스페인의 잔혹한 종교재판시기의 스토리를 그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파치슴에 항거하는 의도로 작곡되었다는 것이다. 달라피콜라는 1차 대전 직전의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자라났다. 그의 고향인 현재 크로아티아의 파진(Pazin)은 그가 태어날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하여 있었다. 파진에는 이탈리아 상당수의 사람들이 살았다. 달라피콜라의 아버지는 파진에 있는 유일한 이탈리아어 학교의 교장이었다.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인이었기 때문에 1차 대전 중에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로 강제이송되어 일종의 수용소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이 끝나자 고향 파진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달라피콜라는 청년 시절에 무솔리니의 선전을 믿고 그를 지지하였다. 특히 무솔리니가 이탈리아의 스페인내전 관여를 반대하자 무솔리니에 대하여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솔리니가 히틀러와 손을 잡고 히틀러의 인종차별정책에 동조하자 환멸을 느끼고 파치슴과 나치에 항거하는 입장이 되었다. 달라피콜라의 유태인 부인인 라우라 루짜토가 무솔리니의 위협을 받은 것도 큰 이유였다. 오페라 '죄수'는 파치슴과 히틀러의 나치에 항거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어머니가 죄수를 위로하고 있다.

                   

두번째는 이 오페라가 음울하고 황폐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더구나 12음 기법으로 작곡되어 있어서 음악이 호감을 주지 못하므로 극장마다 공연을 꺼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파리 국립오페라의 감독인 제라르 모르티에(Gerard Mortier)가 관중들이 환영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무대에 올려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오페라 애호가들은 달라피콜라의 '죄수'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한 차에 파리의 갸르니에극장(국립오페라극장)이 과감하게 무대에 올렸던 것이다. 파리의 공연은 대단히 드라마틱하며 음악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는 평을 받았다. 일단은 성공이었다. '죄수'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스페인에서 이단을 색출하여 처형하던 잔혹한 종교재판의 시기에 어떤 스페인 사람이 죄수로서 감방에 갇힌다. 어머니가 죽음을 앞 둔 아들을 면회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 지내는 중에 간수 한명과 친구가 되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 간수는 죄수를 '형제'(Fratello)라고 부르며 탈옥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죄수는 탈옥의 날만 기다리며 희망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드디어 죄수가 죽음을 무릅쓰고 탈옥에 성공하여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간수가 팔로 감싸안으며 환영한다. 그런데 그 간수는 다름아닌 악명 높은 종교재판관이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죄수가 마음에 품고 있던 희망은 실은 또 다른 고문이었다는 것이다.

 

죄수는 어느땐가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유는 죽음이었다.

                    

오페라 '죄수'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공연된 것은 1950년 5월 20일 플로렌스의 테아트로 코뮤날레에서였다. 미국 초연은 그로부터 10년후인 1960년 9월 29일 뉴욕시티센터에서였다.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가 지휘한 것이었다.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방송과 연주회 형식 등을 포함하여 약 200회의 공연이 있었다. 등장인물은 죄수(Bar), 어머니(S), 간수(T), 대종교재판관(T), 신부 1(T), 신부2(Bar)이며 고문담당자가 구원의 형제라는 명칭으로 등장하지만 아무런 대사도 하지 않는 역할이다.

 

장소는 스페인 아라곤의 수도 사라고사(Saragossa: Zaragoza)이며 시기는 16세기 중반이다. 프롤로그는 어머니가 감옥에서 아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머니는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장면에 대하여 노래한다. 스페인의 필립2세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동굴 깊숙한 곳으로부터 어머니에게 다가오지만 가까이 오자 갑자기 '죽음'으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어머니의 노래는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잠시후 무대 뒤에서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므로서 어머니의 히스테리컬한 노래가 겨우 중단되며 프롤로그가 끝난다.

 

종교재판관이 관장하는 감옥에서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 얘기를 나눈다. 죄수(아들)는 그가 당한 고문과 고통에 대하여 얘기한다. 그런중에 어떤 간수(Gaoler) 한 사람이 자기에게 얼마나 희망과 믿음을 주었는지 모른다는 얘기도 한다. 죄수는 마치 어릴 때의 기도가 응답을 받은 듯하다고 말한다. 그때 간수가 나타나서 플란더스에서 봉기가 일어나 얼마 후면 플란더스의 뢸란트(Roelandt)에서 자유의 종소리가 다시 울리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당시 플란더스는 스페인의 치하에 있으면서 독립을 갈구하고 있었고 필립 2세는 이를 억압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죄수는 자기도 어느때인가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게 된다. 간수는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형제여 믿음을 가져라. 우선 잠을 자 두시오.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라는 이상한 말과 함께 나간다. 간수는 감옥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나간다. 그것을 본 죄수는 급히 밖으로 나간다.

 

죄수는 어릴 때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자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죄수는 지하의 긴 통로를 따라 탈옥을 시작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죄수의 탈옥을 무대의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다. 죄수는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죄수는 탈옥을 하면서 두 명의 신부들이 앉아 있는 곳도 무사히 피해간다. 신부들은 신앙토론을 하느라고 죄수가 지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마침내 죄수는 지하를 벗어나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고 믿는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린다. 죄수는 그것이 뢸란트의 종소리라고 생각한다. 죄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죄수는 자유를 얻었다고 믿는다. 장면은 바뀌어 죄수가 한 밤중에 어떤 정원에 있다. 죄수는 탈옥했다고 믿어서 기쁨에 넘쳐 있다. 정원의 한쪽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죄수는 기쁨에 넘친 나머지 나무를 두 팔로 얼싸 안는다. 하지만 그 나무는 실은 사람이었고 더구나 그 사람은 다름아닌 종교재판관이었다. 종교재판관이 죄수에게 '왜 지금 우리를 떠나려 하는가? 당신은 이제 구원을 얻게 되었는데 말이요'라고 묻는다. 그제서야 죄수는 자기의 마지막 구원은 화형장에서 얻게 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오페라는 죄수가 '자유요?'라고 중얼거리는 중에 막이 내린다.

 

죄수는 탈옥을 하지만 실은 종교재판관의 손아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