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의 잘못된 만남
파파 하이든
소크라테스는 “당신이 좋은 아내를 마지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고 나쁜 아내를 마지하면 철학자가 될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상 유명한 악처인 크산티페의 언행에 혼이 난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다운 결혼관이다. 역대 작곡가의 부인으로서 악처의 반열에 든 사람은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 그리고 하이든의 부인 마리아 알로이지아(Maria Aloysia)를 들수 있다. 이 세명의 악처중 그나마 하이든의 부인인 알로이지아가 남편을 위해 큰 도움을 주었다. 남편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년의 하이든에게 그나마 자유의 시간을 제공했다. 하이든이 마리아 알로이지아와 결혼하게 된 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판단착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을 했던 하이든은 보헤미아의 귀족 모르친 백작의 궁정 오케스트라 악장이 되어 그나마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하이든은 그때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문제를 비로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하이든의 피아노 레슨을 받는 학생 중에 테레제라는 예쁜 아가씨가 있었다. 마을 이발사의 딸이었다. 하이든은 테레제를 자기의 인생반려자로 생각하고 정성을 들였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테레제는 수녀가 되고자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아마 하이든의 대쉬가 부족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로써 하이든의 첫 번째 결혼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테레제의 아버지인 쾰러는 상당히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하이든에게 동생 테레제 대신에 언니 마리아가 있으니 결혼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식으로 테레제의 아버지는 혼기를 놓친 큰 딸 마리아를 결국 하이든과 결혼시키는데 성공했다. 결혼식은 1760년 가을에 있었다. 신랑 하이든은 28세였고 신부 마리아 알로이지아는 세 살 연상인 31세였다. 하이든이 동생과 결혼하려다가 언니와 결혼한 것은 모차르트가 언니와 결혼하려다가 동생과 결혼한 경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건 그렇고, 유럽에는 “서둘러 결혼하면 천천히 후회한다”는 얘기가 있다. 이 말은 하이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하이든은 결혼한후 40여년동안 그야말로 계속 후회하는 생활을 했다. 왜 후회했는가? 한마디로 말하여 아내 마리아 알로이지아가 음악에 대하여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로이지아의 동생 테레제는 그래도 음악에 대하여 이해가 있었다. 하지만 언니 마리아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뿐 아니라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주부로서 살림을 꾸려나갈 능력이 없는 것까지는 참을수 있었지만 질투심이 많았던 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이든은 훗날 사람들에게 ‘나의 아내인 마리아는 내가 음악가인줄 모르는 것 같았다. 마리아는 내가 작곡가이든 구두 수선공이든 그저 돈만 벌어다 주면 되었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하이든이 고심하여 완성한 악보를 케이크를 만드는 밑종이로 사용하거나 또는 머리를 세트하는데 사용하는 일이 허다했다. 또 하이든이 오라토리오 공연을 위해 여성 성악가들과 연습을 하고 있으면 그래도 여자라고 질투심은 있어서 일부러 연습실에 들어와 훼방을 놓기가 일수였다. 처음에 하이든은 억지로 참았으나 나중에는 참기가 어려워 결국 부부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하이든은 왜 마리아같은 여자와 결혼을 했을까? 아버지의 과잉보호 아래에서 자란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콘스탄체와 즉시 결혼을 했다고 하지만 세상물정을 잘 알고 있으며 대인관계도 원만했던 하이든이 어째서 마리아와 같은 무식녀와 결혼했는지는 궁금한 일이다. 아마도 하이든의 여성관은 다른 사람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아무튼 마리아 알로이지아와의 결혼은 하이든의 일생에서 가장 큰 과오라고 할수 있다. 마리아는 하이든과 거의 40년을 살았지만 슬하에 자녀가 없다. 마리아는 1800년 3월 세상을 떠났다. 하이든이 68세 때였다.
에스터하지 궁전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지 얼마후 하이든은 다음과 같은 문서를 작성하여 공증까지 마쳤다. “내가 만일 재혼한다면 루이지아 포르첼리 이외의 다른 여성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며 그렇지 않고 내가 혼자 지내게 된다면 내가 죽은후 루이지아 포르첼리에게 종신연금으로 매년 3백 굴덴을 줄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어찌하여 하이든은 이같은 이상한 유언장 스타일의 문서를 남겼던 것일까? 그보다도 루이지아 포르첼리라는 여인은 누구인가?
하이든이 그런 문서를 만들기 거의 20년전 에스터하지 궁정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안토니오 포르첼리라는 사람을 고용한 일이 있다.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올때에 부인 루이지아(Luisia)와 함께 아이젠슈타트로 왔다. 당시 안토니오는 나이도 많고 병치레도 잦았으나 루이지아는 19세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루이지아는 모습만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고왔다. 루이지아는 병약한 남편을 위해 어려운 살림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 모습을 본 하이든은 어느새 루이지아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품게 되었다. 동정은 사랑으로 변하는 법이다. 하이든과 루이지아는 그로부터 12년 동안 친구 이상의 마음으로 지내왔다. 하이든과 루이지아의 사랑은 에스터하지 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물론 하이든의 부인인 마리아가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설마 60이 넘은 하이든이 새파란 여인과 무슨 일을 꾸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비교적 입다물고 조용하게 지냈다. 루이지아는 아이젠슈타트에 온 후로 두 아이를 낳았다. 세간에서는 두 번째 아이는 하이든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무튼 루이지아를 사랑했던 하이든은 유서에 루이지아를 위한 내용을 적어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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