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저명 인사

팔레 트라우촌 앞의 페르디난드 라이문드 기념상

정준극 2008. 12. 26. 14:15

팔레 트라우촌 앞의 페르디난드 라이문드 기념상


배우이며 극작가인 페르디난드 라이문드의 기념상은 팔레 트라우촌(Palais Trautson)의 앞에 있다. 팔레 트라우촌은 7구 노이바우(Neubau)의 무조임슈트라쎄(Museumstrasse) 7번지에 있는 아름다운 궁전이다. 라이문트는 1790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이다. 소년시절에는 제빵기술자가 되기 위해 제과점에서 견습공으로 일했다. 그러나 연극에 대한 소질은 무시할수 없었다. 라이문트는 이미 21세 때부터 요셉슈타트 극장(Theater in der Josefstadt)의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33세 때인 1823년에는 드디어 자기 자신의 첫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마법의 섬의 기압계장인’(Der Barometermacher auf der Zauberinsel)이었다.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후 ‘유령왕의 다이아몬드’(Der Diamanddes Geisterkönigs)와 ‘백만장자가 된 농부’(Bauer als Millionär: 동화세계에서 온 아가씨)를 내놓아 인기의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알프스왕과 염세가’(Der Alpenkönig und der Menschenfeind: 1828)와 ‘낭비가’(Der Verschpender: 1833)였다. 라이문트의 코미디는 오늘날에도 오스트리아 각지에서 빈번하게 공연되는 작품들이다.


라이문트는 1836년 비엔나에서 자살했다. 어떤 개에게 물린 일이 있는데 광견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라이문트는 비엔나 익살(Posse)에서 최고의 재능을 보여준 배우였다. 그의 익살은 다분히 해학적이어서 특히 서민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팔레 트라우촌 앞의 라이문트 기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