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서울

외국어대학교

정준극 2009. 1. 29. 00:40

한국외국어대학교(HUFS)

 

 교문의 학교명 간판. 멋있다. 한문글씨를 참 잘 썼다. 어느분이 썼나? 

 

이문동에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에 1960년부터 1964년까지 4년동안 다녀서 졸업했다. 독일어를 전공했다. 명색이 4년동안 외대를 다녔지만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1학년 때인 1960년에는 4.19 학생의거 때문에 수업이고 뭐고가 없었다. 학생들은 스크램을 짜고 이문동에서 시청 앞까지 걸어와서 데모를 했다. 경찰과도 티격태격했던 데모였다. 무훈담은 나중에 학교 앞 다방에서 진행되었다. 4.19 후에는 학교 재단과의 분규 때문에 학생들은 맨날 학교에서, 그리고 남대문에 있던 재단이사장 사무실 앞에서 데모를 했다. 수업시간이 곧 데모시간이었다. 2학년 때인 1961년에는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또 다시 어수선해서 공부고 뭐고 안중에 없었다. 장발 단속에 걸린 학생들도 많았다.

 

2학년때에는 등록금 낼 일이 까마득하여 마침 신문에 통역장교를 모집한다고 해서 동국대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루고 합격한 일이 있다. 당시 신문에는 3년근무, 중위 임관, 사단이나 군단 배치 등의 조건이 걸려 있었다. 마침 학병(빵빵)이 없어지고 대신 ROTC가 생기는 마당에서 어차피 누구든지 3년동안 군대를 갔다 와야 할 입장이었다. 친구(주염돈)와 함께 기왕이면 장교로 가자고 해서 시험보아 합격하여 수색에서 기차타고 논산까지 갔었다. 가서 보니 전반기를 마치고 나면 금마의 후반기까지 가야하며 그 후에는 광주의 보병학교와 영천의 부관학교까지 마쳐야 하고 중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소위를 주며 복무기간은 3년 이상 거의 7년까지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광주의 보병학교는 죽었다고 복창해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아무튼 너무나 힘들어서 그냥 집으로 왔다. 그런후에 학교에 억지로 등록하고 어찌어찌하여 졸업까지 했다. 졸업후엔 곧바로 쫄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인천 공설운동장에서 모인후 기차타고 다시 논산을 갔다. 1960년대 초반은 모든 것이 열악한 형편이어서 대학교라고 해도 제대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휴강이 많았다. 학생들도 군대문제, 등록금 마련 문제 등으로 어느 순간에 학교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어느 순간에 제대하고 교정에 나타나는 형편이었다. 당시는 학병제도가 있어서 복무기간이 일반병의 30개월과는 달리 1년반이었다.

 

외대는1954년에 설립되어 처음에는 종로2가 기독교서회 건물 옆의 무슨 건물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이문동 허허벌판으로 옮겨왔다. 본관건물 하나밖에 없었다. 학교 앞은 모두 들판이었다. 지금의 전철 이문역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외대 뒤에는 경희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학생들은 외대를 경희대 부속대학이라며 중얼거렸다. 45년만에 처음으로 이문동의 외대를 찾아 보았다. 요즘엔 별로 할 일도 없어서 평소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을 우정 시간을 내어 방문하고 있는 처지이다. 외대는 무척 변해 있었다. 건물도 무척 많이 들어서 있었다. 언제 저렇게 부지를 확보했을까 싶을 정도로 넓어 졌다. 생각나는 교수님? 박술음 학장님, 정처묵 독일어과 교수님. 당시에는 총장이 아니고 학장 시스템이었다. 교정에 박술음 학장님의 기념상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분의 영어식 이름은 솔럼 팍(Solemn Park)이었다. 미국 친구에게 솔럼 팍에 대하여 얘기했더니 '아니, 사람 이름을 어떻게 공원(Park)이라고 짓냐?'면서 갈갈 거리기에 '야, 이 친구야 너희들은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양복장이(테일러), 대장장이(스미스), 어부(피셔), 농부(바우어) 기타 등등이 있는데 그래도 파크라고 하면 적어도 점잖지 않느냐?'라고 말한 일이 있다.

 

 외대인의 탑? 그럴듯한 탑이지만 탑 아래에는 약간의 쓰레기... 시멘트는 녹쓸고...

 교수회관. 대단하다.

 아마 1960년대에 있었던 본관 건물이라고 생각되는데 맞나? 그땐 이 건물 하나뿐!

 도서관. 대단한 장서가 있는 듯.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학생이 아니라서 출입금지.

 법학관. 외대에 법학이니 경제학이니 하는 학부가 생겼다고 해서 왜 있어야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본관 일부. 공사중.

 본관처럼 보이는 건물의 위용. 외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인다? 다른 대학교는?

 본관 건물과 바짝바짝 붙어 있는 주변 건물들. 한치의 땅이라도 유용하게! 정말 유용하게!

 상아탑의 모습. 옛날에는 상아탑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는데..

 사이버한국외대는 또 무언지? 멋있긴 하다.

 본관 건물의 위용. 학문의 전당 같다. 그럴듯한 라틴어 구절이라도 적어 놓았으면...

 본관 건물 상단의 뱃지와 교명.

 운동장. 예전에도 운동장이라는 것이 있긴 있었는데. 이건가?

 정문, 아니 교문. 바로 길거리에 있다.

 학생회관 겸 기숙사. 앗! 동남아 사람 처럼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교문에서 이문역 방향으로 바라본 거리 모습. 1960년대에는 꿈도 못 꾸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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