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서울

청계천문화관

정준극 2009. 1. 30. 20:26

청계천문화관(淸溪川文化館)

 

청계천이라고 하면 미안하지만 탁한 구정물부터 머리에 떠올리던 때가 있었다. 온갖 오물이 흘러 내리던 시커먼 개천! 원래 청계라는 말은 잘 아는대로 맑은 물줄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청계천은 맑은 냇물은 커녕 오물 천지의 구정물 집합지였다. 청계천 양쪽을 따라 판자집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들어섰었다. 집도 절도 없는 처지에 청계천 시장에서나마 장사해서 먹고 살자니 청계천에 걸쳐서 집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 냇갈 바닥에 나무 기둥을 박아 집들을 세웠다. 좋게 말하여 수상가옥? 하지만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판자집들이었다. 그런 곳에서 먹고 자고 배설했으니 말하지 않아도 '오죽하면' 이다. 청계천 시장에 물건이라도 사려고 들어가면 길이 하두 좁아서 이쪽에서 저쪽까지 가는 길에 사람들에게 치여서 엔간히 시간이 걸렸다. 쓰리꾼들도 많아서 주머니 조심도 해야했고! 청계천에는 사탕집이 많았다. 사탕이라고하니까 아이들이 먹는 사탕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 뱀탕을 말한다. 일자리가 없던 사람들이 돈 한푼이라도 벌려고 땅꾼으로 변신하여 강원도 산골을 뒤져 뱀들을 잡아 왔다. 그러면 어머니들은 전쟁에 나갔다가 부상을 당해 말할수 없이 쇠약진 몸으로 제대한 아들을 위해, 또는 지게라도 져서 날품팔이를 하는 허약한 남편을 위해 그 어려운 사변중에도 죽어라고 간직했던 은비녀나 은가락지를 팔아 뱀탕을 사서 아들이나 남편에게 먹였다.

 

박정희 대통령 때 삼일 고가도로를 만들면서 청계천을 복개하니 당장은 고약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더구나 세운상가까지 생겨 판자집들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교통도 좋아지고! 그러다가 어느때인지 미군들에게 3.1 고가도로 운전금지 명령이 내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복개한 도로의 아래에는 아직도 청계천이 흐르는데 너무나 오염이 잘 되어 메탄가스가 상당히 축적되어 있으므로 어느 때라도 폭파할 위험이 있으니 운전해서 다니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럴듯한 얘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일 때에 청계천 살리기 사업을 주관하여 2005년 10월 1일 대망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축하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서울 시민은 물론 전국민이 감동으로 지켜본 청계천 복원사업이 마무리 된 것이었다. 당시 노대통령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게 식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날 방송3사는 오전의 국군의 날 기념식을 똑같이 생중계하며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저녁 때의 역사적인 청계천 복원 축하식에 대하여는 중계는 커녕 제대로 뉴스도 내보내지 않았다. 청계천 복원공사는 그런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

 

총 3,670미터가 완전히 깨끗한 물로 변했다. 어디에 무슨 시설이 설치되었는지 등은 다 아는 얘기이므로 생략! 다만 청계천 복원이라는 역사적 대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지하철 2호선 용두역에서 머지 않은 곳에 '청계천문화관'이 문을 열었다는 것만은 말하고 싶다. 서울시민이라면 반드시 한번 방문해 볼것을 권하고 싶다. 잘 만들어 놓은 문화관이다. 전시내용이야 가서 보면 알것이지만 한가지만 덧 붙이자면 옛날 청계천의 판자집들을 재현해 놓은 것이 있어서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문화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관 밖의 길거리에 있다. 불과 50 여년전의 우리네 생활이었는데....

 

 청계천문화관. 앞의 조각은 화합이라는 제목. 글쎄 화합이라!

 니아카. 일본말인데 영어로는 Rear Car. 즉 뒤를 당겨서 가는 차?

 광명상회 간판 위의 전등이 추억을 되살려 주네요. 희미한 전등불. 깜빡깜빡, 들어왔다 나갔다가를 반복.

 가게안의 물건들. 비락 우유가 나오기 시작했군요. 제리뽀가 무언지 아시나요?

 청계연탄집. 담벼락에는 극장 포스터. 그때야 영화보는 것이 최대의 행사.

 가게 안 풍경. 엇, 김승호 주연의 마부 포스터! 감독은 강대진.

 이런 정도의 집이라면 당시로서는 그래도 살만큼 사는 사람의 집.

아직도 서울 도심에 이런 판자집들이 있나요? 걱정마시라! 전시용.

 청계천문화관에 전시하여 놓은 청계천 생활 모형. 비가 오면 기둥이 냇물에 쓸려나가기도 하고...땔감이 없는 사람이 밤에 몰래 기둥을 떼어가기도 하고. 그래서 불침번까지 서고. 집집마다 사다리는 필수. 먹는 물이 제일 문제. 그리고 화장실! 그저 참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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