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國立故宮博物館)
베이징과 타이페이에만 고궁박물관이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생겼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비교적 근자인 2007년 11월에 경복궁 옆에서 문을 열었다. 경복궁의 구내이긴 하지만 경복궁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 5번 출구를 따라 나오면 바로 만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오픈이며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저녁 7시까지 문을 연다. 한국박물관 개관 1백주년 기념으로 2009년 12월 말까지 무료입장이다. 무료인데도 안가보면 손해!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 대한 면면을 새삼스럽게 배우는 곳이다.
베이징이나 타이페이의 고궁박물관은 규모가 엄청나다. 타이페이 고궁박물관의 전시품은 장개석이 본토에서 피난 올 때에 베이징에 있는 보물들을 수십량의 기차에 실어 가져왔다고 한다. 보물들이 너무 많아 대부분은 타로고 협곡이라는 대리석산의 동굴에 보관해두고 나머지를 가지고 전시하는데 몇 년에 한번씩 교체하여 전시해도 수십년이 걸린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벌써 오래전에 타이페이 고궁박물관을 관람한 일이 있다. 놀랄만큼 신기하고 귀중한 전시품 때문에 닫힌 입이 다물어지지 못했었다. 베이징의 고궁박물관은 중국 고궁박물관의 원조이다. 베이징의 자금성 구내에 있다. 규모는 타이페이의 고궁박물관에 비하여 약소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전시품들을 가지고 있다. 베이징과 타이페이의 고궁박물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본론인 한국의 고궁박물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궁박물관의 전시품은 조선왕조에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 대부분 조선 말기, 그리고 고종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의 것이다. 조선왕조의 유물들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사람들이 상당량을 마음대로 가져갔으며 그나마 남아 있던 것들은 김일성에 의한 6.25전쟁 때에 풍비박산이 되었다. 1960대에 들어서서 그나마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자 조선왕조의 유물을 정리하고 제대로 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그래서 덕수궁의 석조전을 빌려 조선왕조의 궁중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토록 하였다. 그러다가 기왕에 별도의 고궁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경복궁 옆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했다. 2005년 10월에 일부가 개관되었고 전면 개관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2007년 11월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실 및 대한제국 황실의 유물 약4만점을 보관하고 있다. 고려왕조와 그 이전의 고구려, 신라, 백제 왕조의 유물들은 대상이 아닌듯 싶다. 빈약하나마 그런대로 나라 체면은 살리고 있는 셈이다. 고려왕조와 그 이전의 삼국왕조에 대한 보물들을 집합시키자면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품을 상당히 가져와야 할것 같다. 그건 곤란한 일이다. 그러므로 조선왕조의 유물들만이라도 충실히 전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직은 빈약하지만 이제로부터 충실해 질것으로 기대해본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입구로 들어가면 2층이다. 2층에는 제왕기록실, 국가의례실, 궁궐건축실, 과학문화실, 왕실생활실 등이 있다. 과학문화실에는 각종 과학병기, 도량형, 의학기기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왕실생활실에는 왕실의 복식, 장신구,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임금이 입는 곤룡포와 왕비가 입는 원삼 옷 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볼수 있다. 궁궐건축실에는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궁궐인 경복궁과 덕수궁에서 나온 건축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좌용무늬 및 봉황무늬 보개장식은 화려하여서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국가의례실에 전시되어 있는 왕실 제기(祭器)들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공부가 된다. 왕실의 제사 때에는 동물로서 소, 양, 돼지를 사용했던 모양이다. 제기 중에는 소, 양, 돼지의 생고기를 놓는 제기; 소, 양, 돼지의 익은 고기를 놓는 제기; 소, 양, 돼지의 내장의 기름을 태우는 제기; 소, 양, 돼지의 피를 담는 제기 등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물기 있는 음식을 담는 제기는 목두(木豆)라고 부른다는 것도 재미있는 표현이다.
궁궐건축실에는 흥미로운 전시품이 하나 더 있다. 대궐 지붕의 추녀마루 끝에 앉히는 잡상(雜像)에 대한 것이다. 무심코 대궐 건물의 추녀마루를 보면 동물인지 사람인지 모를 조그마한 조각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볼수 있다. 바로 잡상이라는 것이다. 잡상을 앉히는 이유는 불길한 기운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잡상은 주로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인물들과 토신(土神)으로 이루어지며 대개 홀수로 배열한다.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잡상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총 7개 잡상들이 한줄로 나란히 앉아 있다. 선두가 대당사전(大唐師傳)이라고 불리는 삼장법사이며 다음이 손오공(孫悟空), 저팔계(豬八戒), 천산갑(穿山甲), 이구용(二口龍), 마화상(馬和尙), 사오정(沙和尙)의 순서이다. 서유기의 가공인물들이 조선왕조의 궁궐에까지 올라와 앉아 있으니 서유기가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잡상이 가장 많은 건물은 경회루이다. 11개의 잡상이 나란히 앉아 있다.
1층에는 조선왕실 사람들의 탄생과 교육문화, 여가활동의 산물인 문예작품과 인장등 귀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순종과 순종황후가 탔던 어차(御車)는 완전히 복원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간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순종황제어차는 미국 GM사가 제작한 1918년도식 캐딜락 리무진으로 7인승이며 배기량은 무려 5,000cc가 넘는다. 전세계적으로 20대뿐이라고 한다. 순종황후인 순정(純貞)황후의 어차는 1914년식 영국 다임러(Daimler) 제품이다. 역시 7인승이며 배기량은 3.300cc이다. 전세계에 3대만 남아 있다고 한다. 1층에는 대한제국실, 왕실문예실, 탄생교육실등이 있다.
지하1층에는 궁중음악실, 궁중회화실, 어가의장실이 있으며 자격루(自擊漏) 모델이 실물대형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어가의장실에는 어연과 임금이 행차할 때에 휴식할수 있는 간이 휴게실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세종 때에 만들었던 자격루는 찾아볼수 없고 현재 덕수궁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1536년 중종 때에 다시 만든 것이다. 이제 그만큼 설명하고 자세한 것을 알고 싶은 분은 고궁박물관 홈페이지인 www.gogung.go.kr을 클릭해 보시기 바란다.
추가: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려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나온다. 경복궁역은 역시 역사적인 인상을 준다. 마치 십장생을 그린 것과 같은 벽조각이 있는가하면 석등들이 줄지어 서 있는 복도도 그럴듯하다. 그보다도 5번 출구로 나가는 길 목에 있는 불노문(不老門)이 눈길을 끈다. 커다란 화강암 한판으로 만들었다는 독립문형 문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불노장생할수 있는 기회가 생길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 불노문이 생겼을 때에는 우정 이 문을 통과해서 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별로 관심들이 없는 것 같다. 일부러 문을 통과해서 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되도록 비켜서 간다. 불노문은 창덕궁 후원에도 있다.
국립고궁박물과 입구
각종 제기. 쓰는 용도에 따라 금속제, 목제, 죽제 등으로 구분된다.
추녀마루의 잡상들. 제일 왼쪽이 삼장법사이고 다음이 손오공이다. 역시 자세히 보면 나의 모습이 보인다.
궁궐계단의 난간 역할을 한 상서러운 동물 조각상. 용같다.
순종이 타던 차. 미국 GM사 제작의 캐딜락이다. 5천씨씨. 7인승.
순종황후가 타던 차. 영국 다임러 제품이다. 세계에 3대밖에 없다.
어연. 이건 지하철 역 포스터를 보고 촬영. 전시장에는 유리전시장 안에 있어서 촬영이 도저히 불가능.
임금님 행차시 간이 휴게시설. 노플래쉬에 사진을 찍자니 이렇게 밖에 나오지 않는다.
황후의 원삼. 유리창 안의 전시품을 장비의 도움 없이 노플래시로 찍는 것은 정말 어렵다.
쌍봉황보개. 어좌봉황무늬보개장식. 잘 보면 사진을 찍는 내모습도 보인당.
쌍용보개. 어좌용무늬보개장식
자격루 모델. 실제 전시품은 대단히 크다. 윗층에서 내려다보고 촬영.
지하철 역 통로의 석등들
불로문. 커다란 화강암 한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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