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건청궁]
건청궁(乾淸宮)은 고종을 위해 지은 궁궐 안의 궁이다. 경복궁의 제일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 새로 건축하여 날렵한 모습이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아직 단청을 입히지 않아서 더욱 신선한 모습이다. 육송의 결이 좋아서 일부러 단청을 늦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 명성황후께서 일본 폭도들에게 죽임을 당하셨다. 건청궁의 어느 방인지는 확실치 않다. 장안당이라는 얘기도 있고 곤녕전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본 놈들은 우리의 국모를 죽이고나서 시신을 건청군 뒤편의 녹산에서 그대로 불에 태워 없앴다. 천하에 이럴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일본에서 나중에 애국자라고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건청궁의 역사현장은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관람할수 있다. 일본 사람들이 간혹 찾아 온다. 어떤 생각들일까?
새로 복원한 건청궁의 장안당
곤녕각(坤寧閣)이라는 현판과 장안당(長安堂)이라는 현판은 고종황제가 친히 쓴 것이라고 한다. 현판 상단 오른쪽에 어필(御筆)이라는 글씨가 써 있다. 고종황제는 글씨를 참 잘 썼던 것 같다. 행랑채의 방문에는 문을 여닫을 때 잡아 당기는 문고리가 없다. 그럼 어떻게 여닫는다는 말인가? 한 쪽 방문을 살며시 누르며 반동으로 방문이 열린다.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이다. 장안당 뒤편에는 수라간이라고 생각되는 별채의 건물이 있다. 수라간 앞에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혹시 반찬을 만들 때 생기는 냄새가 다른 건물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담장을 설치했다는 설명이다.
[전기발상지]
고종황제는 향원지 북쪽에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기를 설치하여 우선 건청궁의 밤을 밝히었다. 전기는 향원지의 물을 이용한 것이었기에 처음에 사람들은 전기를 물불이라고 불렀다. 물불을 가리지 않았나? 당시 전기는 에디슨전기회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보다도 앞섰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직접 에디슨에게 편지를 보내어 백열전등과 발전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명한지 8년만의 일이었다. 에디슨은 일기에 '세상에! 동양의 신비한 왕궁에 내가 발명한 전등이 켜지다니 꿈만 같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건청궁에 전기가 밝혀지자 창덕궁을 비롯한 다른 궁에서 궁인들이 전기불을 보러 별별 핑게를 다 대로 건청궁을 찾아 와서 놀래 자빠질뻔 하다가 갔다고 한다.
한국의 전기 발상지 기념비. [이곳은 고중황제의 어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전소를 설립하여 1887년 5월 6일 건청궁 전등에 점화하고 경복궁에 750개의 전등을 가설 점등함므로써 이 땅에 비로소 문명의 빛을 밝힌 유서 깊은 곳이다.'라고 적혀 있다.
관문각 터. 고종황제가 러시아 건축가에게 요청하여 건축한 3층짜기 양옥이 있었던 자리.
곤녕각. 명성황후가 일본 놈들에게 시해 당하셨다고 생각되는 전각
장안당. 역시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셨다고 생각되는 건물
장안당 현판은 고중황제의 어필
수라간과 건청궁 본건물 사이에 있는 담장. 부엌으로부터의 냄새 방지용이었다는 설명.
옥호루. 명성황후가 주로 거처하던 전각
정시각. 고종황제는 부부관계가 올바러야 만사가 형통한다고 생각했다. 정시각은 부부관계의 올바라야 함을 뜻하는 전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