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한옥마을
서울시내에 조선시대의 지체 높은 사람들이 살던 여러 채의 집들을 한데 모아 한옥마을을 조성하였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지하철 3호선과 4호선 충무로역에서 내려 3번이나 4번 출구로 나오면 쉽게 찾을수 있다. 서울시가 1993년에 남산골 제모습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꼬박 3년이 걸렸다. 무료입장이다. 무료이기 때문인지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찾아오고 있다. 패키지 관광의 경우, 웬만한 곳을 가면 입장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경비절감 차원에서 남산골한옥마을을 당연직 코스로 삼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떻든 외국 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과 살림살이를 보여줄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들어가는 길이 좁고 주차장 시설이 넓지 않아서 여러 차들이 주차하기가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예전에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던 자리라고 생각된다. 당시에는 근처에도 얼씬거리기가 어려웠다. 군부대가 이전하자 서울시가 부지를 정리하여 한옥마을을 조성한 것은 잘 한 일이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서울시 산하의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라는 단체가 관리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새로운 시설이 생기면 반드시 이를 관리하는 별도의 단체가 설립되기 마련이다. 공무원들은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일에 대단한 재능들이 있다. 퇴직공무원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줄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라는 기구는 위인설관의 기구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서울시에서 재정적으로 상당히 보조를 하는지 관리가 잘되고 있다. 더구나 이곳에는 무슨 타임 캡슐인지 무언지가 장대하게 저장되어 있으니 서울시가 혈세를 쓰면서도 잘 했다고 자랑하는 곳이다. 한옥마을에서는 이벤트 행사도 열심히 마련되고 있다. 그래서 중구청 소속의 동네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가을에 한번 갔었을 때에는 중구청 주관으로 무슨 행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온통 막걸리들을 거나하게 마시고 한옥마을을 어지럽히고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이 있다. 선거철이었나?
남산골한옥마을은 서울천년타임캡슐이 매설되어 있다는 명분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앞으로 4백년동안, 즉 2394년까지는 누군가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타임캡슐을 잘 간수할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한양 정도 6백주년을 기념하여 1994년 11월 29일, 남산한옥마을 구내에 마치 피라밋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대단한 구조물을 만들고 이른바 서울천년타입캡슐을 매설하였다. 타임캡슐은 보신각종처럼 생겼다. 그 안에 서울을 대표하는 문물 6백점을 넣었다고 한다. 서울이 수도가 된지 1천년을 맞이하는 2394년 11월 29일에 개봉토록 계획되어 있다. 아무튼 누구 아이디어인지 대단하다. 대단한 만큼 대단한 예산이 집행되었을 것이다. 각종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공무원들은 외국의 사례를 시찰해야 한다면서 솔솔 해외출장을 갔을 것이고, 그리고 공사비와 제작비 등등 시민들의 세금이 무던히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4백년후엔 아무도 남아 있을 사람이 없으니 감사인지 뭔지는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4백년후인 2394년에 누가 타임캡슐을 열어보고 ‘아니, 이게 다 뭐야? 누가 이런 쓰레기들을 넣어놨어?’라고 한다면 곤란할 것이다.
한옥마을에는 크게 다섯 채의 주택이 있다. 원래부터 남산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울의 여러 곳에 있는 것을 옮겨오기도 하고 또는 새로 복원해 놓은 것들이다. 첫째는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 황후 윤비가 어릴때 살았던 집이다. 윤비의 친가는 원래 종로구 옥인동에 있었다. 그러나 집이 너무 낡아 남산골로 옮기지 못하고 건축양식을 그대로 본을 따서 복원하였다. 윤비는 옥인동의 이 집에서 열세살까지 살다가 동궁 계비로 책봉되어 창덕궁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살림집이니만치 부엌과 행랑채, 안방, 사랑방 등이 수많은 가구 및 소품들과 함께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서 학습에 기여하는바가 크다.
순정효 황후 윤비 친가 입구
두 번째 가옥은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재실이다. 해풍부원군은 순종의 장인, 즉 순정효 황후 윤비의 친정아버지이다. 옥인동에 살던 해풍부원군은 딸이 동궁비가 되어 창덕궁으로 들어가고 부원군의 호칭을 받게 되자 동대문 밖 제기동에 재실(梓室), 즉 사당을 만들고 선조들을 모셨다고 한다. 남산골에 있는 재실은 제기동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다. 당시 사당은 어떻게 설치되어 있으며 제사 상위에는 무엇을 진설하였는지를 자세히 알수 있는 가옥이다.
세 번째 가옥은 부마도위 박영효의 집이다. 박영효는 철종(강화도령)의 딸인 영혜옹주와 결혼하였다. 박영효가 살던 집은 종로구 관훈동에 있었다. 이 집을 남산골로 이전하고 일부는 새로 복원하였다.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울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집 중의 하나여서 당시 대가집의 모습을 자세히 볼수 있다. 역시 각 방마다 가구와 소품을 놓아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네 번째 가옥은 오위장 김춘영의 집이다. 조선 말기에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란 사람은 종로구 삼청동에 멋있는 집을 짓고 살았다. 이 집을 남산골로 이전하거나 일부는 새로 복원하였다. 다른 집들과는 달리 일반 평민들의 주택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섯 번째 가옥은 도편수 이승업의 집이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도편수를 맡았던 이승업이 살던 집으로 원래는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 이렇듯 남산골에서는 조선 말기 사대부들 가옥의 서로 다른 양식을 볼수 있어서 공부가 된다.
전통가옥 이외에 남산골한옥마을에는 사울남산국악당과 전통공예관과 야외음악당 역할을 하고 있는 천우각(泉雨閣)이 있다. 남산국악당은 요일별로 여러 분야의 국악을 감상할수 있는 국악예술의 전당이다. 판소리도 있고 무용도 있고 가야금병창도 있다. 외국인들에게도 권면하고 싶은 장소이다. 한옥마을 인근에 있는 ‘한국의 집’(Korea House)에서도 소극장이 있어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을 하지만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한국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한옥마을로 건너와 산책하다가 국악공연을 구경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남산국악당에서도 입장료를 받기는 받는다. 공연장은 국악당 본관건물의 지하에 있다. 별채로 있는 국악당 관리실 건물이 볼만하다. 관리실을 영어로 Control Office라고 적어 놓은 것도 신기하다. 아마 어떤 공무원의 발상일 것이다. 공무원들은 관리(Service)하는 것과 통제(콘트롤)하는 것을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전통공예관에서는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좋은 공예품들을 질서 있게 전시하여 놓았기 때문에 볼만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관광객들이 많이 둘러 볼것 같지는 않다. 대대적인 판촉 행사를 벌여 남산골한옥마을을 다녀간 기념으로 물건들을 사도록 해야 할것이다.
한옥마을에는 전통 정원들이 조성되어 있다. 연못 속에서는 비단잉어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으며 다른 곳에서는 비둘기들이 제법 구구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다. 계곡을 따라 정자들을 마련해 놓아 쉬어가기에 좋다. 한글학자이신 일석 이희승선생님 기념비도 한쪽에 있다.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편에 목멱산 충정사(忠正寺)라는 절이 있다. 예전에 남산을 목멱산(木覓山)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충정사는 대웅전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본관 건물의 아래층을 대웅전으로 삼고 있다.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들이 매우 친근미 있게 느껴진다.
전통혼례에 대하여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다. 한옥마을에서는 박영효가옥 마당, 안채, 사랑채를 개방하여 무료 전통혼례의식을 제공해주고 있다. 하루에 세 번까지 혼례식을 치룰수 있다. 신랑과 신부측에서는 그저 주인공과 수모(수발하는 여인들), 기럭아비(신랑측의 경우), 신부어머니와 오빠(또는 친척 1인)의 복장만 한복으로 갖추고 오면 된다. 그리고 한복을 입되 가급적 고무신을 신어야 한다. 그밖에 모든 집기 등은 한옥마을의 것을 사용하면 된다. 무릇 혼인에는 사례(四禮)가 있다. 혼인을 합의하는 의혼(議婚), 혼일 날짜를 정하는 납채(納采), 예물을 보내는 납폐(納幣), 혼인 의식을 행하는 친영(親迎)이 그것이다. 친영은 혼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대례(大禮)라고 부른다. 보통 혼례식장에서는 친영만을 치루게 된다. 친영례에서는 기럭아비가 신부의 어머니에게 나무 기러기를 드리는 전안례(奠雁禮), 신랑신부가 맞절하는 교배례(交拜禮), 서로 표주박으로 술한잔씩 나누어 마시는 합근례(合근禮)가 치루어진다. 후례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신부가 시댁 식구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현구례(見舅禮), 즉 폐백(幣帛)이 있으며 이 역시 한옥마을에서 모두 치룰수 있다. 사실상 폐백이란 말은 시댁으로 온 신부가 시부모와 시댁식구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릴때 올리는 음식을 말한다.
남산골한옥마을은 매주 화요일에 휴관한다. 매일 4회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문화유산 해설사가 해설안내를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매일 여러 가지 이벤트가 준비되고 있는 가운데 내가 갔을 때에는 지게 져보기, 짚신과 가마니 짜는 시연, 활 만드는 공정 등을 볼수 있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한번쯤 방문해야할 곳이다.
남산골한옥마을 현판과 단청
한옥마을의 일부(박영효 가옥)
물레
박영효 가옥. 시민들을 위한 전통혼례식이 열린다.
박영효 가옥 안채
곳간
부엌 일부. 메주
부엌 일부. 양조
사랑채
순종 황후 윤비 처소
연못
연못 2
장독대
정자
지게 져보기
짚신 삼기
재실
천우각
타임캡슐을 매설한 곳. 가운데 접시 모양의 구조물 밑.
타임캡슐 광장 표지석
타임캡슐 매설장소 들어가는 곳
일석 이희승선생 추모비
목멱산 충정사 입구
목멱산 충정사 대웅전의 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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