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흥궁(龍興宮)
우리가 보통 강화도령이라고 부르는 이원범(李元範)이 조선 제25대 임금인 철종이 된 사연은 잘 아는 내용이므로 생략코자 한다. 다만, 용흥궁에 대하여 한마디 하자면,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용흥궁은 철종이 19세 때까지 살던 잠저(潛邸)이다. 잠저란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외부에서 살다가 임금이 되었을 경우에 그가 살던 사가를 일컫는 말이다. 이원범이 왕에 오르자 강화유수는 부랴부랴 철종이 살았던 집을 그대로 둘수 없다고 하여 기왕부터 쓰러져 가고 있던 초가 3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기와집들을 들인후 용흥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아마 노골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겠지만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생각에서 용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가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후 숨어서 나무꾼으로 지내던 원범은 한양에서 중신들이 자기를 왕으로 모시기 위해 당도하자 자기를 잡으러 온줄 알고 산속으로 도망가서 사흘 동안이나 숨어 있다가 어쩔수 없이 내려와 임금이 되어 한양으로 갔다고 한다. 아마 고려궁지를 지나 북문 뒤편에 있는 숲속으로 도망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걸 보면 철종이란 사람은 아이큐가 대단히 높던지 그렇지 않으면 아주 낮았던 모양이다.
용흥궁은 강화대교를 건너 교동도 방향의 대로를 따라 가다가 고려궁지 및 성공회 강화성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바로 나온다. 용흥궁이라고 하니까 서울의 경복궁이나 창덕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경희궁 정도는 될것으로 짐작하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용흥궁은 말이 궁궐이지 실은 자그마한 기와집 몇채가 담장 안에 모여 있는 주택일 뿐이다. 안채가 있고 사랑채가 있으며 대문 옆에는 행랑채도 있다. 하지만 무슨 궁이 대문 앞이 좁아 빠져서 골목길에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만들어 놓고 궁이라는 이름을 붙인 당국 및 강화유수의 배짱도 알아 모셔야 할것 같다.
성공회 강화성당쪽에서 내려다본 용흥궁
용흥궁은 자칫 길을 찾기가 힘들다.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서 있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칠수 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이외의 차는 들어갈수 없다. 대신, 차를 가지고 갔다면 성공회 강화 성당 앞에 있는 용흥궁 공원 주차장에 세우면 된다. 무료이다. 그나저나 용흥궁은 명색이 문화재인데 주변 지역이 '아니올시다'여서 매우 민망스럽다. 골목길에는 온통 식당들이 줄지어 섰으며 미용실 등도 있다. 궁궐로 들어가는 입구로서는 민망스럽다. 용흥궁 대문 옆에는 비석이 두 개가 세워져 있지만 제대로 간수가 되지 않은 듯 당장이라도 쓰러질것만 같다. 윗마당에 있는 작은 전각에 철종의 잠저였다는 비석이 있어서 그나마 임금님이 어릴때 살았던 집인 것을 알게 해준다. 재미난 것은 용흥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부터 고려궁지까지 가로등이 강화도령을 연상케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앗! 가로등 위에 강화도령의 모습이!
앞에서 말한 대로 철종이 살던 집은 형편없는 초가집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3칸짜리 초가집이라고 하니 부엌과 안방과 건넛방이 각각 행색만 갖추고 하나씩 있는 대표적인 서민가옥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청년 이원범이 19세까지 나무나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연줄이 닿아서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니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 아닐수 없다. 철종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잘 모른다. 철종의 아버지는 귀양살이를 하러 강화에 와서 강화의 어떤 양반집 규수를 아내로 맞이하여 지내다가 철종, 즉 이원범을 생산하였는데 철종의 외가는 강화읍 버스터미널에서 서남쪽으로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 가는 쪽에 있어서 사람들이 간혹 들려보곤 한다.
용흥궁의 집들은 낡았다.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은듯 싶다. 그래도 계속 보수는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갔을 때에는 온통 마당을 헤집어 놓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이다. 대문을 거쳐 들어가면 그 작은 구내에 관리사무소까지 있다. 내전은 전통다도 예절교육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무슨 행사 때면 마당에서 다도 시범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진들이 게시판에 붙어 있다. 전통 다도와 철종의 잠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철종이 전통차를 좋아했나? 좁은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두었기 때문에 상당히 협소하다. 그래서 이게 과연 임금님이 살던 곳이라고 기념하는 곳인가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그래도 창덕궁의 낙선재처럼 소박한 분위기가 든다는 설명문이 적혀있다. 용흥궁은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기왕에 문화재로 지정해 놓았으면 예산을 들여서라도 깨끗하게 복원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관광자원도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용흥궁 들어가는 입구의 골목길을 정비하여 적어도 자잘구레한 식당골목은 아니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성공회 성당 앞에 용흥궁 공원은 널찍하게 조성해 놓았는데 정작 용흥궁은 천대를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기야 강화 촌구석의 이원범씨가 철종이 되고 나서 뭐하나 잘한 것 없이 나중에는 놀고먹는 데만 정신이 팔렸었다고 하니 잠저도 그런 박대를 받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용흥궁 대문의 현판
용흥궁 대문에서 들여다 본 안채. 관리인이 있기는 있는 것인지?
용흥군 행랑채와 대문 앞의 비석들. 궁이라는 이름이 어색할 지경으로 주위 환경이 열악하다.
안채. 그 좁은 용흥궁 안에 용흥궁다도예절교육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이원범도 수강생?
잠저기념비각. 비석에 철종 잠저라고 적혀 있다.
외전과 우물. 앗, 사랑방 누각 아래에 자전가 한대! 혹시, 철종이 임금이 되기 전에 타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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