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창경원의 원숭이

정준극 2009. 3. 24. 11:16

창경원의 원숭이


창경궁은 오랫동안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지내왔다. 1911년부터 1983년까지 무려 72년동안 창경원(昌慶苑) 신세였다. 일제가 궁(宮)을 공원과 같은 원(苑)으로 격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백성들에게서 조선왕조에 대한 인식을 일부러 지워버리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일제는 공원을 만든다는 구실로 창경궁에 있는 수많은 전각들을 헐어내고 나무들을 베어 내어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했다. 동물원에는 원숭이도 있고 코끼리도 있었다.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창경원의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와 코끼리를 구경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큰 행사로 여겼다. 창경원의 동물원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동물원이었다. 동양에서는 일본 토쿄, 교토, 중국의 베이징에 이어 네번째였다. 창경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것이 또 있다. 춘당지라는 연못 위를 건너는 대단히 짧은 코스의 케이블카였다. 1962년 개통되었다. 사람들은 하늘을 운행하는 케이블카가 너무나 신기해서 너도나도 타려고 줄을 섰다. 일제는 창경원에 벚나무를 많이 심었다. 벚꽃은 일본 놈들이 자기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봄철에 창경원의 벚꽃놀이는 사쿠라마에(櫻前)라는 일본 놈들의 벚꽃놀이처럼 연중행사였다. 모두들 벚꽃이 활짝 핀 벚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사이다와 김밥과 삶은 계란을 먹으면서 봄날의 하루를 즐겼다. 밤에 전등에 비친 벚꽃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행사였다. 이를 야사쿠라라고 불렀다. 창경원의 야사꾸라는 유명했다. 봄철에 사쿠라가 만개하면 창경원은 어느덧 밤늦게까지 문을 열고 야사쿠라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들여보냈다. 밤에는 벚나무에 전등을 매달아 어두운 창경원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했다. 벚꽃잎들이 나풀나풀 흩날리는 야간의 창경원을 거닌후 춘당지(春塘池)의 수정궁(水晶宮)이라는 식당에 들어가서 오무라이스와 같은 경양식을 먹는 것은 장안 청춘남녀들의 대단한 데이트 이벤트였다. 

 

예전에 동물원이 있던 곳 (2009. 3 촬영).


내가 생전 처음 창경원이란 곳을 간 것은 아마 1955년 4월초라고 생각된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아버지를 따라 창경원에서 열리는 경주 정씨(鄭氏) 화수회(花樹會)에 참가했던 일이 있다. 나같이 어린 아이가 화수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종친회 쪽에서 볼 때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나로서는 화수회에 참가하면 적어도 1회용 얇은 나무상자에 담은 점심 도시락을 하나 받을수 있으며 기념으로 이발소에서 쓰는 것 같은 타올도 한 장을 받을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의의가 있었다. 당시에는 전쟁 후여서 살아남은 종씨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각 문중의 종친회마다 화수회를 끔찍이도 열었다. 그리하여 주말에 창경원에서 열리는 화수회만 해도 거짓말 보태서 수십개는 되었다. 그저 창경원 안의 여기저기 그럴듯한 나무 그늘 장소에 사람들이 어색하게 웅기중기 모여 있으면 화수회가 틀림없었다. 왜 하필이면 화수회를 창경원에서 여는가? 당시에는 서울이 아직도 폐허나 다음 없었다. 그저 아무데를 가더라도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갈데가 없었다. 단체 예약을 받는 식당도 없었다. 호텔은 반도호텔 하나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나마 모일수 있는 장소는 창경궁과 덕수궁 뿐이었다. 경복궁과 비원(창덕궁)은 출입금지여서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덕수궁은 너무 협소해서 기왕이면 창경궁에서 벚꽃도 구경하고 원숭이도 보려고 화수회 장소를 창경원으로 정했던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 창경원의 화수회에 참가키로 결심한 것은 예에 의한 벤토(도시락) 한개와 타월 한 장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도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와 코끼리를 보기 위함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야, 나 이번 토요일에 창경원 간다’라고 선전했더니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너 참 좋겠다. 원숭이도 보고 코끼리도 볼수 있으니!’라고 말했다. 그만큼 당시만 해도 원숭이와 코끼리를 보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비싼 창경원 입장표를 사가지고 들어와서 원숭이는 커녕 하루종일 사람들에 치여 먼지만 먹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1960년대 초의 창경원 유원지. 케이블카(유람차)와 대회전관람차(Ferris Wheel)가 운행되고 있다. (Credit)

 

 

 

'오궁 일화 > 창경궁의 영욕' 카테고리의 다른 글

5백년을 지켜본 옥천교  (0) 2009.03.29
일제가 훼손한 창경궁  (0) 2009.03.29
창경궁의 수문장 홍화문   (0) 2009.03.29
역사 드라마의 무대 창경궁  (0) 2009.03.29
50년대의 추억   (0) 200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