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창경궁의 수문장 홍화문

정준극 2009. 3. 29. 23:10

창경궁의 수문장 홍화문


반가운 소식이 있다. 2009년에 홍화문의 단청을 입힌단다. 홍화문은 창경궁의 얼굴이요 수문장이다. 그런데 사변후의 모습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낮에 보아도 약간은 흉물스럽고 을씨년스럽다. 그러니 밤에는 귀신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단청을 입히고 말끔하게 청소하면 자랑스러운 2층 누각의 홍화문이 될 것이다. 서울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1959년 8월의 홍화문 앞 모습. 정부수립 제11주년 기념이라는 프라카드가 걸려 있고 청사초롱도 달았다. 당시에는 매표소가 왼편에 있었다. (Credit)


서울의 다섯 궁궐중에 창경궁만이 정문을 동쪽으로 두고 있다. 덕수궁의 경우에는 원래 남향의 인화문(仁化門)이 정문인데 일제 때 도시계획이 숨도 돌릴새 없이 진행되는 바람에 동향의 대안문(大安門)을 정문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1904년 대화재 후에 덕수궁을 수리할 때 대안문을 대한문(大漢門)으로 변경했다. 창경궁의 홍화문이 동향인 것은 순전히 풍수지리설 때문이었다. 고려때 이 자리에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었다. 고려 때에는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을 남경이라고 불렀다. 고려가 남경에 이궁을 세울 때 풍수지리설에 의해 이미 궁궐의 중심부분을 동향으로 두었다. 그래야 왕실이 무탈하고 흥성한다는 주장이었다. 고려 이궁의 중심 건물들이 동향이라고 했으므로 나중에 세종이 수강궁을 세우고 성종이 확장 공사를 할 때에도 중심 건물들을 그대로 동향으로 두었다. 따라서 정문인 홍화문도 당연히 동향이 되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다섯칸 대문이지만 창경궁의 홍화문은 세칸 대문이다. 그래서 더 아담하게 보인다. 홍화문의 양 옆에는 담장이 꺾어지는 곳에 십자각을 세웠다. 십자각들 때문에 홍화문이 더욱 품격 있게 보인다.  

홍화문에서 바라본 옥천교와 명정문. 그리고 명정문 가운데 칸으로는 저 멀리 명정전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명정전의 현판이 직선상에 놓이지 않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수 있다.  


홍화문 앞 광장은 임금이 백성들과의 대화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영조는 균역법(均役法)을 시행하기에 앞서 홍화문 앞에 나가 양반들과 평민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들었다. 양반들은 균역법에 대하여 반대했지만 평민들은 찬성했다. 영조는 일반 백성들의 의견을 따랐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 직접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 홍화문 사미도(弘化門 賜米圖)라는 그림에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다른 궁궐들은 정전에 이르기까지 3도3문이라고 하여 어도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3도를 깔고 세 개의 문을 통과하도록 했지만 창경궁의 경우에는 2문이다. 정문인 홍화문과 그 다음에 있는 명정문만 통과하면 명정전에 이를수 있다. 임금이 백성들과 좀더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대체로 정전과 궁궐 대문과는 일직선으로 놓이게 한다. 예를 들어 경복궁을 보면 근정전으로부터 근정문-흥예문-광화문이 정확히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창경궁의 경우에도 명정전-명정문-홍화문이 일직선상에 놓여야 한다. 그런데 명정전과 명정문은 당연히 일직선상에 놓여 있지만 홍화문은 약간 오른쪽으로 비켜나 있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설계자의 실수인지 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알수가 없다.

 

 

봄이 되어 매화가 만발한 명정문 앞. 왜 매화가 만발하였을까? 창경궁에는 일제가 심어논 벚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봄이면 벚꽃(사쿠라)가 만발했다. 그러다가 일제의 잔영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벚나무들을 모조리 파냈다. 그래서 벚꽃은 사리지고 대신에 매화가 간혹 보일뿐이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다고! 하여튼 정치인들은 못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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