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근대 조선 역사의 증인

정준극 2009. 3. 26. 13:55

근대 조선 역사의 증인

 

덕수궁 중화전 

 

우리나라가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고 불리던 시기가 있었다. 한말의 고종 때였다. 고종은 뜻한바 있어서 1897년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고나서 34년 후의 일이었다. 제국(帝國)은 황제가 통치한다. 고종은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다. 그래서 고종황제가 되었다. 이로써 중국의 황제, 또는 일본의 천황과 동등한 입장이 되었다. 일제는 이 세상에 하늘이 내린 황제는 일본의 덴노헤이까(천황폐하) 하나뿐인데 자기들로서는 형편없다고 생각되는 조선에서 왕이 제국의 황제라고 선포하자 ‘아라! 이고시노 가마니 이쓰므노 아니 덴단 마리므니다’라며 고종을 더욱 못살게 굴었다. 고종의 뒤를 이은 순종도 황제라고 칭하게 되었고 고종황제의 부인은 명성황후라고 부르며 순종황제의 부인은 순정황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고종과 순종을 대한제국의 초대황제, 제2대 황제라고 부르기 보다는 그냥 조선왕조 제26 대 고종, 제27대 순종이라고 편하게 부른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까지 13년동안 존속되었다. 대한제국의 영욕의 현장을 지켜본 것이 덕수궁이다. 덕수궁은 서울에 있는 궁궐 중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장 많이 훼손된 궁궐이다. 1904년에는 대화재가 일어나 덕수궁의 거의 전부가 잿더미가 된 일도 있다. 그후 상당부분을 재건하였으나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일제는 덕수궁의 땅과 건물을 야금야금 팔아버려 결국은 오늘날과 같은 작은 규모로 남게 되었다. 덕수궁에 들어가 보면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하여 너무나 규모가 작아서 ‘애개, 무슨 대궐이 이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일제에 의하여 수난을 당한 우리의 덕수궁! 덕수궁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이나마 풀어보자. 덕수궁이 여름날 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니 뭐니 하는 얘기는 생략!

 

 

대한문 앞의 수문군 교대에 참가한 군악대의 화려한 모습 

 

 

 [사족] 덕수궁의 여러 전각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래 두장의 사진은 극히 한정된 장면이다. 색이 변하고 칠이 벗겨지고, 곰팡이 쓸고....난리도 아니다. 이보다 더한 곳도 많다. 외국 관광객들이 둘러 보고 츳츳이라고 말했다. 창피했다. 신문에는 매일 누가 얼마 먹었느니 누가 얼마를 주었느니 누구는 한개에 1억짜리 시계를 두개씩이나 생일 선물로 받아 꿀꺽했다느니 하는 기사가 나온다. 공금 횡령한 공무원들! 청렴하다고 소리치던 자칭 지도자! 조변석개의 정치인들! 인간도 아닌 연예인들! 땅투기로 벼락부자가 된 돈많은 사람들! 이래도 선진 문화민족인가?

 

 단청은 온데간데 없고...한국 문화재 보호의 현주소!

해동하면서 곰팡이. 담당 공무원들이여! 석조전 우아한 건물에서 등따스하게 놀면서 월급받아 먹지 말고 처마 밑의 거미줄이라도 치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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