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원래 명칭은 경운궁

정준극 2009. 3. 26. 13:58

원래 명칭은 경운궁

 중화문에서 바라본 중화전

 

덕수궁의 본명은 경운궁이고 경운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던 저택이었다.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07년 순종 때였다. 그러므로 고종 시대에도 덕수궁이 아닌 경운궁이었다. 1907년 일제의 압력에 의해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를 하고 경운궁에서 계속 살기로 하자 순종은 아버지 고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고종의 거처인 경운궁을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은 처음부터 경복궁이었고 창덕궁이었는데 덕수궁은 아주 나중에 가서야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얻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한문 앞에 있는 해태상. 덕수궁의 화재 예방용.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은 마치 봉하대군처럼 동생이 임금이라는 빽을 믿고 현재의 정동에 상당히 넓은 저택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월산대군은 배운 것이 없는 시골 노인네는 아니어서 풍류를 즐겨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넓은 정원에 정자도 만들어놓고 잘 먹고 잘 살았다. 아마 허름한 창고도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생일날 선물을 받아서 챙겨 놓으려면 국고를 낭비해 가며 창고를 지었을 것이다. 월산대군이 죽자 후손들이 왕족이라는 위세로 이 저택에서 계속 살았다. 세월이 흘러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갔다. 서울의 궁궐들은 난리통에 잿더미가 되었다. 이순신장군 등의 애국적인 활약으로 왜군들이 물러가자 선조는 타향살이 1년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선조는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저택이 전화에도 무사함을 알고 임시궁궐로 삼았다. 임시궁궐은 정릉동 행궁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정동에는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묘소인 정릉이라는 능이 있었기 때문에 정릉동이라고 불렀다. 선조는 정릉동 행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어 광해군이 즉위했다. 광해군은 행궁이라고 부르는 것은 체면문제라고 생각하여 경운궁이라는 궁호(宮號)를 정식으로 붙여 주었다. 광해군은 7년동안 경운궁에서 지내다가 창덕궁이 재건되자 재빨리 창덕궁으로 옮겨갔다. 경운궁은 빈 궁궐로 남게 되었다.

 

석어당. 인조반정후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이 집 앞 마당에 꿇어 앉히고 광해군의 죄목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야, 이놈아, 네가 네 죄를 알렸다!'...우리나라 사람들은 분명한 죄인인데도 용서하고 난리이다.

 

창덕궁으로 간 광해군은 아버지 성종의 계비인 인목대비가 자기의 생모를 못살게 굴었다고 믿고 인목대비를 경운궁으로 유폐했다. 짐승만도 못한 광해군은 인목대비의 소생인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키고 끝내 잔인하게 죽였다. 광해군은 경운궁에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나서 경운궁을 그냥 서궁(西宮)으로 부르도록 했다. 인목대비에게는 경운궁이라는 명칭도 과분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서궁은 창덕궁의 서쪽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서인(庶人)이 사는 집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도록 했다. 인목대비는 경운궁의 즉조당(卽阻堂)에서 5년동안 눈물을 삼키며 한숨으로 지냈다.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경운궁으로 유폐한 것은 인조반정의 불씨가 되었다. 창덕궁에 있던 광해군은 쿠테타군에 의해 체포되어 경운궁으로 끌려왔다.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즉조당의 바로 옆에 있는 석어당(昔御堂) 마당에 꿇어앉히고 36조의 죄를 물은후 임금을 파한다고 선언했다. 인목대비로부터 왕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은 능양군(인조)은 곧바로 경운궁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인조는 서궁을 원래 이름인 경운궁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더 이상 궁궐로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운궁의 대부분 대지와 가옥을 원주인인 월산대군의 후손들에게 돌려주었다. 넓었던 경운궁은 자그마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그후 경운궁은 180여년동안 빈궁궐로 남아 있었다. 이제 고종이 등장할 차례이다.

 

 덕수궁 중화전 동쪽에 있는 세종대왕 기념상. 세종대왕은 덕수궁에서 지낸일이 없는데...우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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