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

정준극 2009. 3. 26. 14:06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 

 

중화전에서 본 조정과 어도, 품계석, 그리고 중화문

 

경운궁에는 중명전(重明殿)이라는 전각이 있었다. 경운궁을 확장할 때에 가장 먼저 궁궐로 편입된 곳이다. 확장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어느정도 확장되었느냐하면 동쪽으로는 현재의 조선호텔이 있는 곳까지였으며 북쪽으로는 덕수초등학교와 조선일보건물이 있는 곳까지였고 서쪽으로는 러시아공사관 바로 옆의 예원중학교 있는 곳까지였다. 중명전은 현재의 예원중학교와 미국대사관저 사이에 위치했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저는 당시에 미국공사관이었다. 경운궁 확장에서도 미국공사관의 땅은 제외해 놓아야 했다. 그래서 미국공사관을 섬처럼 남겨두고 뒤쪽으로 돌아서 예원중학교 쪽과 연결했다. 중명전이란 곳에서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1905년 11월 17일이었다. 당시 고종황제는 중명전에 기거하고 있었다. 일제는 경운궁 안팎에 무장한 일본군을 겹겹이 배치하고 중명전에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의 대신들에게 앞으로는 일본이 조선을 보호한다는, 말하자면 식민지로 삼겠다는 보호조약에 조인할 것을 강요하였다. 고종황제와 대신들은 ‘나라를 팔아먹다니 말도 안 된다!’면서 보호조약을 거부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세 번에 걸쳐 고종황제를 위협하였으나 고종황제도 한고집 하는 위인인지라 끝까지 서명이나 옥새를 찍지 않고 거부하였다. 결국 이토 히로부미는 찬성하는 대신들만 데리고 보호조약을 체결했다. 이들이 을사오적이다. 일본으로 볼때 고종이란 노인네는 골치 꺼리였다. 그러던 차에 1907년 저 유명한 헤이그 밀사 사건이 불거졌다. 헤이그밀사사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가질 자격이 없는 인간이므로 헤이그밀사사건의 전말은 생략코자 한다.

 

 고종의 나들이. 아니, 황제께서 외바퀴 초헌을 타고 가시다니요?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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