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황궁우(皇穹宇)와 석고(石鼓)

정준극 2009. 3. 26. 16:33

황궁우(皇穹宇)와 석고(石鼓)

 

환구단은 사라지고 황궁우만 남아 있다.

 

조선호텔(웨스틴조선호텔)에 가본 사람들은 호텔 건물 외부, 을지로 방향으로 탑처럼 생긴 높은 전각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앞에 설명판이 있지만 제대로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조선호텔에서 멋있으라고 지어놓은 건물인줄 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구한말, 대한제국의 기막힌 사연이 담겨 있는 건축물이다. 이 탑의 명칭은 황궁우(皇穹宇)이다. 3층으로 된 팔각정이다. 이 일대에 축조되었던 환구단(圜丘壇)의 부속 건물이다. 환구단은 천자(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단이며 황궁우는 조선왕조 왕들의 신위판(神位版)을 모신 건물이다. 고종황제는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환구단을 설치하고 천신에게 이번에 황제가 되었다는 내용을 보고한 후에 황제의 위에 정식으로 올랐다. 원래의 환구단은 대단히 규모가 컸다. 환구단은 둥근 원형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다. 이를 어려운 말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한다. 환구단은 돌을 쌓아 올린 원형 넓은 제단이었다. 1층의 지름이 140m나 되었다. 환구단을 정성스럽게 쌓기 위해서 1천명의 인부들이 동원되었으며 거의 한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완성했다.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단을 쌓는 것이므로 1천명의 인원을 동원한 것이다.

 

황궁우로 올라가는 답도. 이번엔 봉황.


환구단은 덕수궁 동쪽 끝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 자리까지도 덕수궁의 영역이었다. 지금의 시청 앞 광장에는 궁궐 안 관청들이 있었다. 궐내각사(闕內各司)라는 관청들이었다. 궁내부를 비롯하여 전화국까지 있었다. 후에 태평로 길을 넓히느라고 여기에 있던 대부분 건물들을 헐었다. 이어서 1933년 일제가 이 일대를 공원으로 만드는 과정에 나머지 전각들도 헐렸다. 그래서 현재의 시청앞 광장이 생기게 되었다.

 

고종황제 시절의 환구단과 황궁우 사진. 현재는 황궁우만 남아 있다. 

1960년대 반도호텔(현재의 로테호텔 자리)과 황궁우의 모습 

 

웨스틴조선호텔의 자리는 원래 태종 이방원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가 살았던 곳이다. 세종대왕의 누이이다. 그후 선조 시대에 의안군이라는 왕족이 살면서 집을 남별궁(南別宮)이라고 불렀다. 남별궁은 인조 때에 태평관이 철폐되자 중국 사신들이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자란 말이옵니까?’라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이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897년 고종이 황제에 오르는 것과 관련하여 하늘에 제사 드리기 위한 환구단을 축조할 때에 정리되었다. 나중에 조선총독부는 환구단도 못마땅하여 1914년 환구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을 지었다. 조선철도호텔은 조선호텔의 전신이다. 조선호텔은 1968년에 옛 건물들을 허물고 새로 고층건물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환구단은 일제에 의하여 파괴되었지만 다행히 황궁우는 남게 되어 ‘이게 무얼까?’ 하면서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대상이 되었다. 웨스틴조선호텔의 황궁우 건물 앞 발레 파킹 주차장 옆에는 돌북(石鼓) 세 개가 놓여 있다. 하늘에 제사드릴 때 아용하던 의식용 북이다. 북의 옆면에는 용이 현란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단히 훌륭한 조각이다. 마치 살아 있는듯 하다. 조선호텔에 와서 밥만 먹고 가지 말고 황궁우와 석고라도 자세히 살펴보고 가는 것이 여러 면으로 좋을 것이다.

 

석고3형제. 예전에 환구단이 있던 자리이다.


황궁우에 대하여 한마디 더 하자면, 고종황제는 선조들은 그대로 두고 자기 혼자만 황제가 되는 것이 미안하여 조선의 다른 모든 왕들도 황제로 추대하자고 주장했지만 신하들이 그때는 대한제국이 아니고 조선왕국인데 모두 황제로 추존하면 남들이 웃는다고 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다만, 태조 이성계만을 대표로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추존하여 황궁우에 진열한 신위판에 그렇게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태조고황제가 누구냐?’는 시험문제가 나온다면 ‘태조 이성계올시다’라고 공손히 대답하면 된다. 서울에 남아 있는 대한제국의 유일한 흔적은 조선호텔 안의 황궁우와 석고들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황궁우 지붕위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그렇다고 국가가 지정한 사적이므로 누가 마음대로 올라가서 정리할수도 없고...조선호텔 돈 많은데 안내판이나 좀 잘 만들어 설치해 놓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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