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영국인이 설계한 석조전

정준극 2009. 3. 26. 14:35

영국인이 설계한 석조전

 

 석조전 전경

 석조전 정면. 상단에 이왕가의 오얏꽃 문장이 있다.

석조전 개수공사 현장. 2010. 2 . 한동안 못볼것 같다.

 

오쿠라토목회사라는 것이 있다. 오쿠라토목회사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수만점의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린 기업으로 악명이 높았다. 오쿠라토목회사는 조선에도 진출하여 토목공사를 많이 맡았다. 그러면서 조선의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렸다. 실제로 오쿠라토목회사는 1917년 경복궁의 자선당을 해체하여 일본으로 빼돌려 오쿠라의 개인저택에 세우고 ‘조선관’이라는 이름의 개인박물관으로 사용했다. 그런 오쿠라토목회사가 1900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의 시공을 맡게 되었다. 석조전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건조된 것이다. 설계는 영국인 하딩(G.R. Harding)이란 사람이 맡았다. 석조전은 네오클라식 건축양식으로 도리아식 기둥을 세운 것이 특징이다. 지하층은 시종이 기거하는 방과 부속 시설로, 돌계단을 올라가서 들어서는 1층은 대접견실과 대기실로, 2층은 황제와 황후가 거처하는 여러 용도의 방으로 구성되었다.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고 덕수궁이 황폐화되는 과정에서 석조전은 일본회화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해방이후에는 미소공동관리위원회의 회담장소로 사용되었다. 서쪽 별관은 1938년 일제가 이왕가미술관으로 사용했다. 석조전은 현재 덕수궁관리사무소가 쓰고 있다. 공무원들의 사무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곳일 것이다.

 

석조전 서관. 미술관으로 사용. 그러나 저러나 좀 산뜻하게 단장 좀 해야 할것 같다. 정부 예산은 다 무엇에 쓰나? 공무원들 수당으로 다 주나? 멀쩡한 보도 블록 뜯어내고 다시 까는 경비로 쓰나?  

남쪽에서 바라본 석조전 서관. 미술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석조전 앞의 분수는 1938년에 완성된 것이다. 우리나라 궁궐의 전통 양식은 건물 뒤에 정원을 조성하여 후원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덕수궁은 석조전 앞에 정원을 조성하였다. 사방 네곳에 물개모양의 청동조각을 앉히고 물을 뿜어 나오게 한 것도 특이하다. 웬 물개?

 

석조전 앞의 정원과 분수. 조선시대 사람들은 물이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믿어서 억지로 물이 아래에서 위로 뿜어 올라가는 분수를 회피하였다. 그래서 석조전 앞에 분수를 만들어 놓고도 한동안 물을 뿜어 올리지 못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