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운현궁의 봄

결혼식장 노락당

정준극 2009. 3. 27. 00:43

결혼식장 노락당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운현궁은 고종의 친부인 이하응의 저택이다.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11살까지 살던 집이다. 운현궁이라는 명칭은 고종이 1863년 왕위에 오른 후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부근의 고개이름인 운현(雲峴: 구름재)을 따서 운현궁이라고 했다. 운현궁에 대하여는 인터넷에 수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기 때문에 본인의 블록에서 재탕한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는 기억을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소개코자 한다. 한가지는 노락당(老樂堂)이라는 집이다. 고종과 나중에 명성황후라고 추존된 민비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다. 당시 고종은 15세였고 민비는 한 살 많은 16세였다. 민비의 진짜 이름에 대하여는 아직도 정확치 않다. 민자영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냥 민치록의 딸이라고만 불러왔다. 민비는 결혼 전에 여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안이 가난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민비는 삼간택이 끝나고 왕비로서 확정되자 운현궁의 노락당에 잠시 기거하면서 왕비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노락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요즘도 노락당에서 전통혼례식을 실비로 올릴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식결혼식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노락당 안뜰 


노락당은 대원군 이하응 부부가 거처하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왕비가 잠시나마 거처로 삼았던 곳이며 또한 고종이 가례를 올린 장소이기 때문에 그런 집을 더 이상 안채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안채로서 이로당(二老堂)을 새로 지었다. 운현궁의 중심 건물은 세 채이다. 노락당, 노안당, 이로당이다. 모두 늙을 노(老)자가 들어가는 것이 신통하다. 대원군의 치국 이념중 하나는 노인들을 편안하게 모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원군은 논어에 나오는 노자안지(老者安之)라는 말을 좋아했다. 노년을 편안하게 살게 되어 흡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운현궁의 사랑채를 노안당(老安堂)이라고 불렀다. 결혼식을 올린 민비는 곧바로 창덕궁의 중전인 대조전(大造殿)으로 들어가 살았다. 대조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크게 만들다'는 뜻이니 즉 큰 사람이 될 왕자를 만들어 내라는 뜻이다.


대원군은 장수하였다. 향년 78세로 1898년 운현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명복)이 고종이 된지 35년이 지나서 세상을 떠났으므로 대원군이라는 타이틀로서 35년을 지낸 것이다. 대원군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해인 1897년 고종은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위에 올랐다. 대원군은 아들이 황제가 되었지만 별다른 존칭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대원군은 며느리 민비가 1895년 경복궁의 건청궁에서 비운의 최후를 맞이한 사건도 겪었다. 대원군의 노년은 편한 것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사늑약을 보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의 여파로 청국에 유배된 대원군의 모습(천진)  

 노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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