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춘당지와 수정궁

정준극 2009. 3. 29. 23:18

춘당지와 수정궁


창경궁의 북쪽 후원에는 춘당지(春塘池)라는 연못이 있다. 연못은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대춘당지와 소춘당지이다. 위쪽의 작은 연못, 즉 소춘당지가 조선왕조 때부터 있던 본래의 춘당지이며 아래쪽의 큰 연못은 1909년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할 때에 보트놀이를 할수 있는 유원지로 만들기 위해 새로 조상한 것이다. 대춘당지 일대는 실은 논이었다. 그 논에 물을 대던 연못이 춘당지였다. 창경궁의 논에서는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농사의 시범을 보여 풍년을 기원했다. 대춘당지의 가운데에 있는 섬은 1986년에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이다. 일제는 대춘당지의 끝쪽, 소춘당지에 면한 곳에 마치 온실처럼 생긴 레스토랑을 짓고 수정궁(水亭宮)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수정궁은 해방 이후에도, 사변이후에도 식당으로서 영업을 하였다. 주로 스파게티와 같은 경양식을 팔았지만 봄철의 벚꽃놀이 기간에는 우동이나 덥밥(돈부리)도 팔았다. 창경궁이 창경원이던 시절에 수정궁 식당은 아주 인기를 끌었다. 대춘당지 상공에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가 있어서 상춘용으로 운행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케이블카일 것이다. 춘당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언덕너머에 창덕궁의 춘당대가 있기 때문인듯 싶다. 창덕궁 후원에 있었던 춘당대는 넓은 마당이었다. 과거시험을 보거나 군사들의 훈련을 행하였다. 무과 과거를 볼 때에는 말을 달리고 활을 쏘는 시험도 있었다. 그럴 때면 창덕궁의 춘당대에서 말을 타고 창경궁의 춘당지가 있는 곳까지 달려와 활을 쏘고 갔다고 한다. 춘당지 위쪽, 현재 온실이 있는 곳의 부근은 일대가 모두 채소밭이었다. 궁중에 납품하기 위한 채소를 심었다. 채소납품 등을 관장하기 위해 내농포(內農圃)라는 관청을 두었다. 내농포는 임금의 농사시범도 관장하였다. 내농포는 춘당지 부근에 있었다. 


춘당지. 연못 바람이 시원하다.

 1950년대 말 춘당지에서의 보트놀이. 앞에 보이는 건물이 수정궁 (Credit)

 

춘당지의 춘색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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