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정조가 세상을 떠난 영춘헌

정준극 2009. 3. 29. 23:17

정조가 세상을 떠난 영춘헌

 

 

양화당의 동쪽에는 집복헌(輯福軒)과 영춘헌(迎春軒)이라는 소박한 건물이 있다. 궁궐의 전각이 아니라 마치 일반 사대부집의 행각처럼 생긴 건물이다. 단청도 없으며 통명전처럼 월대 위에 지은 집도 아니다. 집복헌에서는 사도세자와 순조가 태어났다. 정조는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를 특별히 총애하여 집복헌에 자주 출입하였다. 정조는 나중에 집복헌에 붙어 있는 영춘헌을 아예 침전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집복헌은 보통 민가와 다름없는 소박한 집이다. 영춘헌은 정조가 주로 독서실 겸 집무실로도 사용하던 건물이다. 정조는 나중에 영춘헌을 침전으로도 사용했다. 영춘헌은 정조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정조는 등에 난 종기가 원인이 되어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만일 정조가 영조처럼 오래오래 살았더라면 무척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수도를 수원으로 진짜 옮겼을지도 모른다.

 

정조가 세상을 떠난 영춘헌

 집복헌과 영춘헌


정조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하여는 TV드라마 ‘이산’에서 자세히 그려놓았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과장되거나 가공된 부분도 있겠지만 대체로 사실과 근접하다는 평을 받았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는 정조를 무척이나 미워하여 온갖 모략으로 정조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 영조의 딸인 화완옹주까지 가세하였다. 정조는 자칫하면 이들 때문에 왕에 오르지도 못할뻔 했다. 그랬으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효도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조는 항상 정적들의 틈바구니에서 지내야 했다. 그런 정조가 한창 나이에 병에 걸렸다. 의관은 가벼운 종기라고 진찰했다. 뛰어난 의학 실력을 갖춘 정조는 의관과 직접 의논하여 약방문을 처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참으로 어이없게도 15일 만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혹자들은 정조가 독살 당하지 않았다면 별것도 아닌 종기로 그렇게 빨리 죽을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조의 죽음은 미스터리였다. 정조는 죽을 때 마지막으로 ‘수정전’이라는 말을 했다. 수정전은 정순왕후의 거처였다. 그러므로 정조의 죽음은 더욱 의문으로 남아 있다.

 

집복헌의 내실. 순조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