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그랜드 오페라

이탈리아의 그랜드 오페라

정준극 2009. 3. 30. 23:45

이탈리아의 그랜드 오페라

발레로 구분 

 

베르디의 '돈 카를로'. 메트로폴리탄 무대
                          

이탈리아 오페라와 프랑스(파리) 오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발레에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오페라 중간에 무조건 발레가 나와야 만족했다. 프랑스 오페라에서 발레는 오페라의 한 파트였다. 오페라 공연에서 발레리나는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할을 맡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면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올림피아가 발레리나로서 출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 중간에 발레가 나오더라도 오페라와는 독립적인 경우가 보통이었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발레가 오페라 중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막과 막 사이에 나온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나오는 발레는 초연때의 발레가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오페라의 스토리와 연출이 초연 이후의 공연에서 바뀌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발레는 초연 이후의 공연에서 형태가 바뀌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발레는 오페라의 한 파트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이탈리아에서는 발레가 중요치 않지만 파리에서는 그럴수 없었다. 만일 베르디가 그의 Il Trovatore를 파리에서 공연하게 되었다면 중간에 발레를 넣어야 할 정도로 파리에서는 발레가 필수였다. 단, 예외가 있었다. 파리에 있는 이탈리아극장(Theatre Italien)에서 공연한다면 발레를 추가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대장간의 합창'을 부르는 집시들. 나폴리 산 카를로극장.


음악사적으로 볼때 그랜드 오페라는 프랑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초기 이탈리아에서도 그랜드 오페라가 있었다.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 사베이로 메르카단테(Saveiro Mercadante)등이 이탈리아식 그랜드 오페라를 선보였다. 물론 발레가 없는 오페라들이었다. 파치니의 대표작은 L'ultimo giorno di Popei(폼페이 최후의 날: 1825)이며 메르카단테의 대표적인 그랜드 오페라는 Il bravo(영웅: 1839)였다. ‘폼페이 최후의 날’은 글자 그대로 화산이 폭발하며 용암이 흘러 도시를 뒤덮는 대규모 스펙터클한 작품이었다. 메르카단테의 ‘영웅’은 알레비의 ‘유태 여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메르카단테가 파리에 갔을 때 ‘유태 여인’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영웅’을 작곡했다고 한다. 도니제티의 L'assendio di Calais(칼레의 학살: 1836)은 발레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프랑스 그랜도 오페라의 범주에 속한다. 실제로 도니제티는 이 오페라를 작곡할 때에 프랑스의 취향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하면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로 쓰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의 대명사인 '아이다'에서 개선장면


1860년대의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

과라니의 등장 


1860년대와 1870년대에 들어와서 이탈리아의 신토불이 그랜드 오페라에 발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스타일의 그랜드 오페라를 내놓은 대표적인 작곡가들은 안토니오 고메스, 필리포 마르케티(Philippo Marchetti), 아밀카레 폰키엘리등이다. 브라질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안토니오 고메스(Antoni Gomes)의 Il Guarany(과라니)는 애초부터 오페라 발레(Opera ballo)를 목표로 작곡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랜드 오페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밀카레 폰키엘리(Amilcare Ponchielli)의 La Gioconda(라 조콘다)는 오페라 발레로 작곡한 것이 아니지만 오페라 발레로 인정받고 있다. ‘과라니’는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의 효시였다. 이밖에도 보이토(Boito), 카탈라니(Catalani), 푸치니, 프란케티(Franchetti), 레온카발로 등도 그럴듯한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를 내놓았다. 보이토의 Mefistofele(메피스토펠레)와 마르케티의 Romeo e Giulietta(로미오와 줄리엣)은 처음에 그랜드 오페라로 간주되지 않았다. 프랑스 모델보다 공연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페라 도중에 나오는 대규모의 발레 때문에 그랜드 오페라의 장르에 넣기도 한다.

 

과라니(Il Guarani). 아순시온 극장.


1870년대의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

아이다의 등장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Aida(아이다)이다. '아이다'는 비록 전4막이지만 공연 도중 몇 번에 걸친 화려한 발레 장면이 나오며 더구나 개선행진 장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단히 웅장한 것이기 때문에 그랜드 오페라의 대명사처럼 불려지고 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저 유명한 아이다의 개선장면은 65년전 파리의 무대에 올려진 스폰티니의 La vestale(베스타 여사제)에서의 행진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다. 메르카단테도 La vestale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베르디의 아이다의 마지막 장면은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메르카단테의 ‘베스타 여사제’에서 주인공이 산채로 매장당하는 마지막 장면과 같다.

 

베르디의 '아이다'. 베로나 야외극장


'아이다'는 대성공이었다. 카이로에서의 세계 초연에서 들렸던 박수와 환호성이 밀라노에서의 이탈리아 초연에서도 들렸다. '아이다'가 이탈리아 오페라에 던져준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과거 프랑스에게 점유했던 그랜드 오페라의 주도권을 이탈리아가 차지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디 이후의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아이다'께서 가신 길을 밟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고메스의 후속타인 Fosca(포스카: 1873)와 Salvator Rosa(살보토르 로사: 1874), 마르케티의 Gustavo Wasa(구스타프 바사: 1875), 폰키엘리의 I Lituani(리투아니아 사람: 1874), 그리고 가장 눈부신 작품인 La Gioconda(라 조콘다: 1876)에서 들어나 보였다. 고메스의 Fosca(포스카)는 폰키엘리의 La Gioconda(라 조콘다)의 선배이다. 베니스가 무대인 것도 같고 자기를 희생하는 여주인공의 역할도 같다.  Gustavo Wasa(구스타보 바사)는 스웨덴의 영웅적인 바사왕에 대한 스토리이다. 무대에서는 당시 바사왕의 이름을 떤 세계 최대의 군함 바사호를 건조하여 러시아와 일전을 마다하지 않으려던 모습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구스타보 바사'에도 발레 장면과 대행진 장면이 나온다. 어느모로 보다 그랜드 오페라가 아니라고 할수 없는 대규모 오페라이다. I Lituani(리투아나 사람)는 시카고의 리투아니아 이민사회가 개작하여 무대에 올렸고 그런후에는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에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무대에 올린바 있다. La Gioconda는 초연 이래 오랜 세월동안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의 단골메뉴였다. 라 조콘다는 스페인, 포르투갈,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심지어는 미국에서도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반면 이상하게도 독일,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베네룩스 등 북부유럽과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동부유럽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만 파리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톱 순위이다.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

 

후기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은 1880년대, 나아가 1890년대에도 그랜드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처럼 빈번하지는 못했다. 마르케티의 '구스타보 바사'는 어느 모로 보나 대단한 규모의 그랜드 오페라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나온 또 다른 역사물인 Don Giovanni d'Austria(오스트리아의 돈 조반니: 1880)는 그랜드 오페라가 아니었다. 그랜드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고나 할까? 한편 폰키엘리의 Il Figluol Prodigo(1880)는 공식적인 발레가 등장하지만 그랜드 오페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푸치니의 '투란도트'